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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은 냉정합니다. 동정이나 자비 따위는 없습니다. 먹기 위해 쫓고 먹히지 않기 위해 도망칩니다. 그 끝없는 레이스 속에 찍히는 사진 한 컷이 때로는 300쪽 짜리 소설책보다 더 많은 울림을 안겨줍니다. 야생사진가 테드 로버츠가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뒤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사진 역시 그렇습니다.

사진가 테드 로버츠가 올랜도 습지공원에서 포착한 장면. 왜가리가 새끼악어를 잡아 날아오르는 가운데 어미악어가 분노한 표정으로 뒤쫓고 있다. /Ted Roberts Facebook

미국 플로리다주 올란도의 습지 공원에서 벌어진 일이에요. 평화로운 낮시간 일광욕을 즐기던 앨리게이터 악어 가족의 평화가 산산조각나버렸습니다. 고작 채 몇주도 되지 않은 새끼 악어를 전광석화처럼 날아온 왜가리가 낚아챘습니다. 이곳에서 생태계 최고 포식자 위치에 있는 늪지의 제왕 악어라지만, 새끼는 그저 새끼일 뿐입니다. 왜가리의 부리에 짓눌린채 하늘로 둥실둥실 떠가는 새끼를 보며 어미 악어가 전력질주합니다. 그 눈에는 분노가 이글거립니다. 그 눈빛 안에 이렇게 절규하고 있는 듯 합니다. “내 새끼 내려놔 이 왜가리놈아. 찢어죽일테다!”지상에서 최대 시속 32㎞까지 내달릴 수 있는 악어지만, 두 날개를 퍼덕이며 처오르는 왜가리를 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왜가리가 앨리게이터 악어 새끼를 잡은 뒤 부리에 물고 있다. 한참동안 물어서 지쳐빠지게 한 뒤 단번에 삼켜버렀다. /NBC2 News Youtube

냉혈동물 파충류에게도 가족애가 있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악어는 같은 무리내에서도 때로는 동족포식을 하며 적자생존의 철칙을 잔혹하게 지키기로 악명높거든요. 그러나 알을 낳아만 놓고 자리를 뜨는 대다수 파충류와 달리 악어는 부화를 전후한 시점 때까지는 어미가 도마뱀 크기만한 새끼들을 곁에 두고 돌봅니다. 알에서 나온지 얼마 안된 것들은 ‘무늬만 악어’일 뿐, 늪지의 포식자에게는 맛과 영양이 가득한, 거기에 사냥까지 쉬운 먹거리거든요. 특히 왜가리는 가장 무서운 천적입니다. 한입에 들어가기도 버거운 큼지막한 어린 악어를 집념으로 집어삼키는 미국 NBC2 뉴스의 유튜브 동영상 잠시 보실까요?

왜가리의 S자 목은 필살의 무기입니다. 이 S자 목을 사냥감을 향해 쭉 뻗어서 먹잇감을 부리로 나꿔채지요. 이걸 치명적 타격이라는 뜻의 ‘데스블로(deathblow)’라고도 합니다. 악어가 먹잇감을 통째로 문 뒤 자기 몸뚱이를 360도로 회전시켜 고깃덩어리로 찢어발기는 죽음의 회전, 일명 ‘데스롤(death roll)’에 비견될만한 종 특유의 필살기입니다. 부리에 걸리는 순간 살아남는 것은 거의 포기해야 한다고 봐야 합니다. 수리나 매처럼 부리와 발끝을 이용해 찢어발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꿀꺽 삼킵니다. 그런데 일단 부리에 물린 먹잇감들은 강렬한 삶의 의지로 눈물겨울 정도로 거세게 저항을 하죠. 하지만 굳게 닫힌 왜가리의 부리는 좀처럼 열리지 않습니다. 부리의 구조상 잠시 놓아준다고 해도 이제 다시 물어버립니다. 그렇게 물었다 놨다 하는 과정에서 먹잇감은 기진맥진하면서 혼이 빠져나가버리고 말지요. 사냥감이 물새나 설치류일 때는 아예 물속에 여러 번 담가서 익사시키기도 합니다. 물을 잔뜩 먹고 축 늘어진 몸뚱아리를 물고 ‘언젠가는 삼키고 말겠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왜가리의 눈빛을 보면, 먼 옛날 티라노사우루스나 벨로시랩터가 저랬겠구나 싶기도 해요.

왜가리에게 잡혀 목구멍으로 넘어간 드렁허리가 필사의 몸부림끝에 왜가리의 목덜미를 찢고 나온 장면이 카메라에 생생하게 포착됐다. /New York Post

자신의 목구멍보다 훨씬 두껍고 널찍한 먹잇감을 꾸역꾸역 뱃속으로 밀어넣는 과정에서 왜가리의 S자형 목은 뱀의 그것을 넘어서는 신축성과 탄력성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탐욕은 욕심을 부리는 법이죠. 식사를 마친 왜가리가 몸에 커다란 탈이 난 경우도 아주 드물게 포착되죠.2020년 11월 메릴랜드에서 아마추어 사진가 샘 데이브가 포착한 왜가리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왜가리의 어마무시한 먹성이 초래한 섬뜩한 결말이 담겨있거든요. 왜가리는 여느 사냥때와 마찬가지로 미끄러운 몸뚱어리의 드렁허리를 잡아서 목구멍속으로 넘겼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습니다. 드렁허리의 저항이 워낙 심했는지, 목덜미에 뚫린 구멍으로 몸을 절반 가까이 넘게 내민 장면이 그대로 렌즈에 잡힌 것입니다.

2020년 미국 메릴랜드주에서 촬영된 사진. 왜가리에게 먹힌 드렁허리가 식도로 넘어가기 전 필사의 저항으로 왜가리의 목덜미를 뚫고 나오는 장면이다. 안타깝게도 드렁허리는 완전히 탈출하지 못했다. /New York Post

목구멍에서 빠져나온 기다란 몸뚱어리의 주인공이 드렁허리임은 멀리서도 식별이 가능했습니다. 드렁허리의 처절한 탈출욕망의 움직임이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헐거운 목덜미 부분에 구멍을 뚫어준 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포식자와 피식자는 아마도 숨통이 끊어지는 황망한 무승부를 기록했을 공산이 큽니다. 드렁허리는 끝내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목덜미에 대롱대롱 달려있다가 서서히 말라죽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슴 부위에 총탄맞은 것처럼 커다란 구멍이 뚫린 왜가리 역시 치명상을 입고 완치됐을 공산은 커보이지 않습니다. 왜가리는 한배에 난 동기간끼리도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합니다. 찢어진 목덜미를 봉합해줄만한 천연 동물병원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미 플로리다 일대 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래종으로 악명높은 버마비단뱀이 왜가리를 산채로 잡아 몸통으로 죄어죽인뒤 머리부터 꾸역꾸역 삼키고 있다. /Everglades Holiday Park Facebook

‘데스블로’라는 치명적 사냥기술, 왕성한 먹성과 본능욕으로 치장한 이 왜가리가 늪지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는 까닭은 바로 두 날개가 있기 때문이죠. 날개가 없다면, 아니 날개가 있어도 더 강력한 포식자에게 잡히는 순간 그저 고깃덩어리로 전락할 뿐입니다. 플로리다 습지의 생존력 만렙 괴수 왜가리가 드물게 먹잇감이 돼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 포착돼 페이스북(Everglades Holiday Park)에 올라왔습니다.

버마비단뱀이 왜가리를 잡아 죄어죽인 뒤 통째로 삼키는 드문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외래종인 버마비단뱀은 미국의 각 주 정부가 공식적으로 포획 및 살처분 활동을 벌이고 있을 정도로 생태계 파괴자로 악명 높습니다. 심지어는 성체 악어까지 꿀꺽 삼켜버린 뒤 내장 파열로 공멸하는 장면도 종종 포착되고 있지요. 그런 놈이 운좋게도 왜가리를 포획했습니다. 뱀은 살아숨쉬는 사냥감을 죽인 뒤 삼킬지언정 이미 죽은 시체를 삼키는 스캐빈저는 아닙니다. 이 왜가리는 아마도 옥죄어오는 뱀의 차가운 비늘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으며 서서히 혼이 빠져나갔을 것입니다. 이 왜가리의 뱃속에는 방금 꿀떡 꿀떡 삼켜서 채 삭히지도 않은 새끼악어와 오리가 들어있을지도 모를일입니다. 그렇게 자연의 바퀴는 비정상적인 듯 정상적인 방식으로, 작동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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