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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정치적인 동물이라고 하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정답은 없겠지만 모범답안으로 대왕판다(자이안트판다 또는 판다곰)를 들 수 있을 겁니다. 종 자체가 정치적으로 행동한다는게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 정치적인 도구로 활용된다는 측면에서 그렇죠. 중국 쓰촨성의 제한된 삼림지대에서만 살아가는 이 동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귀여운 생김새와 희소성 때문에 중국이 다른 나라와 관계를 유지하는데 윤활유 역할을 하는 외교 사절로도 활용돼왔거든요.

대만 타이베이 동물원 의료진이 최근 건강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는 대왕판다 퇀퇀을 진료하고 있다. /타이베이 동물원

그런데 요즘 그 외교 사절 노릇을 하는 대왕판다의 와병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대만에서 살고 있는 판다인데, 몰라보게 악화된 건강 상태가 마치 일촉즉발 위기의 양안관계와 아주 비슷한 양상이거든요. 대만 공영 RTI의 보도 내용을 우선 소개합니다. 타이베이 시립동물원에서 살고 있는 판다 퇀퇀(團團)이 일전에 앓았던 간질병이 도졌다는 소식입니다. 발작했다는 소식에 동물원 측은 두 차례 뇌 MRI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분석 결과 퇀퇀은 현재 뇌에 악성 종양으로 의심되는 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거예요. 퇀퇀의 병세는 확연합니다. 걸음이가 무기력한 모습이 두드러진데다 자극에 따른 반응도 느려졌다고 하네요.

대만 타이베이 동물원 스태프가 기력이 쇠한 모습의 '퇀퇀'의 턱을 어루만지며 몸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타이베이 동물원

동물원 측이 퇀퇀의 건강상태에 대해서 별도로 발표할 정도로 대만에서는 주요 뉴스였습니다. 동물원 측은 판다를 보내준 쓰촨성 판다보호연구센터와 온라인 화상방식으로 의견을 주고받는다고 RTI 방송은 전했습니다. 급한 불은 끈 듯 하지만, 현재의 안정세가 잠정적인 성격이 강하고, 언제 다시 긴급하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RTI는 “퇀퇀이 앓고 있는 병이 뇌종양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호스피스 케어를 원칙으로 돌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동물원 측은 의학 치료 외에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는 방법까지 강구하고 있으며, 쓰촨성 연구센터와의 대면·비대면 협진을 활성화할 거라고 합니다. 무력 침공과 전쟁 발발 가능성 등이 거론되며 험악한 분위기가 오가고 있는 양안 사이에 ‘판다의 건강’에 대해서는 적극 협력이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타이베이 동물원 의료진이 최근 건강 이상 증세가 두드러진 퇀퇀의 몸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타이베이 동물원

중국의 대표적인 소프트 외교 수단인 판다가 대만에 도착한 것은 2008년입니다. 한국에도 일찍이 1990년대에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 선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다른 나라들보다 많이 늦은 편이죠. 여기엔 정권에 따라 긴장과 이완이 반복됐던 양안 정세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 집권여당인 민주진보당에 비해 친중(親中) 성격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야당 국민당 인사들이 2005년 5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판다를 대만으로 보내는 계획이 발표됩니다.

대만 타이베이 동물원 관계자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판다 퇀퇀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타이베이 동물원

이 계획은 그러나 예정대로 실행되지 못합니다. 당시 집권세력은 반중 및 독립성향이 강한 민주진보당이었거든요. 이후 총통선거에서 국민당이 승리하고 2008년 집권하면서 중단됐던 판다의 대만행이 성사됩니다. 통상적인 ‘판다 외교’에 따라 혈연지간이 아닌 암수한쌍이 대만으로 가게 됐습니다. 수컷의 이름은 퇀퇀, 암컷의 이름은 위안위안(圓圓)입니다. 암수 이름의 한글자씩을 합치면 단원(團圓)입니다. 이는 둥글다는 뜻도 있지만, 한 집안이 단란하게 화합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대만을 정식국가가 아닌 이탈한 하나의 성으로 간주해 강제적인 통일을 목표로 하는 중국의 대만 정책이 작명에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중국에서 건너와 대만 타이베이 동물원에 살고 있는 퇀퇀이 무기력한 모습으로 누워있다. /타이베이 동물원. RTI 홈페이지

이런 점을 감안해서인지 판다의 자국행을 중국의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으로 경계하면서 받아들이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치명적 귀여움을 가진 대왕판다는 대만인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세 출산에도 성공했지요. 밀월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국민당 집권시기 대만과 중국의 관계는 순탄해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민주진보당의 집권과 독자노선, 서방세계와 중국과의 관계 악화, 중국 권위주의 체제의 강화 등 양안 관계와 세계 정세가 긴밀하게 얽히고 긴장 국면으로 들어갔습니다. 양안이 한반도 못지 않은 ‘화약고’로 인식되어가는 상황에서 퇀퇀의 병세 악화 소식이 들려온 것이죠. 판다의 병세를 호전시키기 위한 양안 의료진의 협진에 시선이 쏠리는 까닭입니다.

1972년 중국에서 미국으로 보낸 최초의 대왕판다인 링링과 싱싱 커플. /스미스소니언 동물원

사실 올해는 판다가 국제외교무대에 본격적으로 데뷔한지 반세기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1971년 그 유명한 핑퐁외교(미국 탁구선수단의 중국 방문)를 시작으로 이듬해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미·중 공동성명 등 숨가쁜 외교적 사건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판다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중국이 판다 한쌍을 미국에 선물했고, 1972년 4월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에 암수 한쌍인 링링과 싱싱 커플이 도착했습니다. 퍼스트레이디였던 퍼트리샤 닉슨 여사가 직접 공식 환영 행사를 주재할 정도로 귀빈 대우를 받았죠. 이 판다 커플을 보려는 사람들로 동물원은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하드 외교의 딱딱함을 풀어주는 소프트 외교의 대표사례가 됐어요.

2005년 스미스소니언 동물원 수의사들이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새끼 판다 타이샨을 돌보고 있다. /스미스소니언 동물원

올해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은 판다 도입 50주년을 맞아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연중 펼치고 있습니다. 반세기 넘는 동안 새끼가 태어나기도 했고, 중국으로 돌아가기도 했으며, 새 개체가 오기도 했죠. 물론 그 때 워싱턴에서 귀빈 대접을 받으며 살았던 판다 커플도, 판다 외교의 한축이었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퍼트리샤 닉슨 영부인 커플도 모두 지금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당시의 주역 중 지금까지 생존한 인물은 내년이면 100살을 맞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정도입니다.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에서 태어난 판다 '베이베이'가 2019년 '조상들의 고향'인 중국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스미스소니언 동물원

반세기 동안 판다는 ‘신분 변화’도 겪었습니다. 판다의 주식은 대나무를 비롯해 용담과 샤프란 등 풀줄기들입니다. 물론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아닙니다. 아주 아주 드물게 쥐나 두더지, 뱀과 곤충 등을 잡아먹기도 해요. 적극적으로 사냥을 하는 건 아닙니다. 이렇게 두드러진 차이점 때문에 판다를 곰으로 봐야 하느냐 마느냐는 여러 해동안 논쟁거리였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판다는 곰이 아닌 별도의 대왕판다과로 분류됐습니다.

2013년 인공수정을 통해 메이샹이 낳은 바오바오의 출생 직후 모습. /스미스소니언 동물원

미국너구리, 레서판다(붉은판다) 등과 가까운 무리로 분류됐죠. 하지만, 지금은 북극곰·불곰·반달가슴곰 등과 함께 곰 패밀리에 속하죠. 남아메리카 특산종인 안경곰, 동남아의 터줏대감 말레이곰과 함께 작은 곰의 무리입니다. 오늘도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동물원에서는 외교 사절로 보내진 대왕판다들이 각별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반면, 중국과 서방국가들의 파열음이 더욱 커지면서 세계 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고요. 모쪼록 퇀퇀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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