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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중동부 콩고민주공화국의 한 숲. 윤기가 도는 밝은 회색빛 털을 한 보노보가 사색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그의 품에 황토색깔을 작은 몽구스가 안겨있습니다. 자애로운 보노보의 미소와 겁에 잔뜩 질려있지만 약간은 안도한 듯한 앙증맞은 몽구스의 얼굴이 한 장면에 포착됐습니다. 과연 이 유인원은 왜 몽구스를 품고 있는 것일까요?

어미 보노보가 다른 녀석과 함께 자기 새끼의 사체를 먹는 장면이 포착됐다. /BBC 유튜브

몽구스는 앞으로 어찌될 것일까요? 갖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는 이 사진은 영국 런던 자연사 박물관 주최 연례 생태 사진 콘테스트 출품작으로 사진가 크리스티안 지글러의 작품으로 공모전 입상작 발표 전부터 외신에 보도돼 관심을 끌었습니다. 유인원의 하나인 보노보는 온순하고 사회성이 강하고 주식은 과일과 풀 등으로 알려져있죠. 몽구스는 덩치는 작지만 피와 살점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식육류입니다. 보노보의 눈에서 살의도, 식욕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 점을 몽구스도 간파했으니 손아귀에서 당장 빠져나가려 발버둥치지 않으려는 듯 해요. 그러나 이 사진을 소개한 영국 BBC가 전한 전문가의 분석은 결이 다릅니다.

보노보가 몽구스를 안고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 몽구스는 용케 살아남았지만, 보노보는 잡아먹기 위해 몽구스를 잡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BBC. Christian Ziegler

20여년동안 보노보의 생태를 연구해온 루이코탈레 보노보 프로젝트의 바버라 프루스 박사는 사진 속 정황을 이렇게 추정합니다. 새끼를 돌보고 있던 몽구스를 보노보가 덮칩니다. 저항하는 어미 몽구스의 숨통을 끊어놓고 새끼 몽구스를 전리품으로 거머쥡니다. 종내에는 간식거리로 먹어치울 참입니다. 그러나 당장은 손아귀에 둡니다. 마침내 식욕이 댕기면 보노보는 새끼 몽구스를 식사 테이블에 올릴 것입니다. 고통없이 삶을 마감하도록 숨통을 끊는게 아닌 산채로, 여러 점의 찢긴 고깃덩이가 돼 보노보의 위장속으로 직행할 공산이 큽니다. 다만 이런 예측대로 상황이 흘러가지는 않았고, 한시간쯤 보노보의 손아귀에 잡혀있던 몽구스는 ‘석방’됐습니다. 나름 해피엔딩이랄까요.

지난 2016년 11월 포착된 보노보의 새끼 폿힉 장면. BBC는 어미가 무리의 다른 녀석과 자기 새끼의 사체를 먹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분석과 단정이 낯선 건 익히 알려진 보노보의 인상 때문입니다. ‘작은 침팬지’라는 뜻의 ‘피그미침팬지’라고도 알려진 보노보는 어깨높이는 침팬지보다 10㎝쯤 작은 60㎝이고, 얼굴 색깔은 전반적으로 어둡습니다. 침팬지가 아프리카 중부 내륙에서 대서양에 면한 서아프리카까지 상대적으로 넓게 분포하는 반면, 보노보는 콩고민주공화국 일대의 열대 우림으로 서식지역이 한정돼있어요. 두 종류를 좀 더 뚜렷이 구분해주는 것이 ‘성정’입니다.

풀을 잡고 있는 보노보. 친척뻘인 침팬지와 함께,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샌디에이고 동물원 홈페이지

사회학·인류학 등 인간 행태를 연구하는 학문에서 보노보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입니다. 한집안 사촌뻘이라고 할 수 있는 침팬지의 과격함과 대비되는 보노보 특유의 유순함과 사회성으로 일찌감치 학계의 주목을 받았어요. 위계질서와 육체적 우월성에 의해 돌아가는 여타의 유인원 집단보다 협업·평등으로 볼수 있는 요소가 많다는 이유죠. 오래전부터 전세계의 동물학자와 생태연구가들이 보노보의 삶에 눈길을 둬온 까닭입니다. 침팬지의 경우 영양분 섭취를 위해 주기적으로 같은 영장류인 콜로부스 원숭이를 집단으로 사냥한 뒤 날고기를 포식하는 장면의 잔혹성이 부각되면서 보노보의 온건함이 더우 주목된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보노보가 한손으로 풀을 잡고 풀끝을 문 채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 홈페이지

하지만 이번 사례를 포함해 현장의 보노보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습성들에 관한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는 우리가 알고 있던 보노보의 모습과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우선 영국 2016년 올라온 BBC 자연 다큐 유튜브 동영상을 보실까요?

WARNING_ Bonobo Cannibalism _ Eart

콩고의 우거진 숲에서 보노보 두 마리가 식사에 열중입니다. 왼쪽에 덩치카 큰 성체 암컷이 있고, 마주본채 식사자리에 동석한, 어려보이는 녀석이 있습니다. 성체 암컷이 먹고 있는 것의 정체 파악이 어렵지 않습니다. 자신의 것과 아주 빼닮은 팔뚝입니다. 끝에는 살점과 근육이 달려있어요. 내레이션의 건조한 음성이 확인해줍니다. 놈이 포식하고 있는 것은 숨통이 끊어진 제 새끼의 몸뚱아리라고요. 동석한 파트너는 놈이 속한 무리의 다른 어린 녀석일 수도 있고, 아니면 놈의 다른 자식일 수도 있습니다. 후자 일 경우 부모 자식간, 동기간 포식 행위라는 불편한 진실이게 됩니다. 그럴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때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극단의 스트레스로 인한 이상행동, 사고로 인한 불행한 상황?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확실한 정답이 제시되지는 않습니다.

어린 보노보가 무리의 어른들과 함께 하며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 홈페이지

보노보의 영아살해·동족포식 습성에 대한 연구논문은 21세기 들어 여러 차례 보고된 바 있어요. 그 중 한 편 내용은 간략히 이렇습니다. 교토대 야생동물연구센터 도쿠야마 나호코 박사 등 다섯명이 함께 작성한 ‘콩고민주공화국의 왐바, 코콜로포리에서의 야생 보노보의 모성 동족 포식(maternal cannibalism) 사례’라는 제목입니다. 어미가 제자식을 산채로 똑은 죽은 사체로 먹는 현상을 말하는 모성동족포식은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된 비정상적 행동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특히 사람과 가까운 영장류에서 나타나는 모성 동족포식은 일어나는 일도 거의 없거니와 발생한다고해도 극한적인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극도의 일탈행동으로 분석됩니다. 제 정신이라면, 미치지 않고서야 저럴 리가 없다는 거죠. 그러나 연구진이 관찰한 야생보노보의 행태는 비정상적으로 정상적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콩고민주공화국 루이코탈레에서 암컷 보노보가 죽은 새끼를 뜯어먹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 말고도 연구 지역 내 다른 두 곳-왐바와 코콜로포리에서 역시 어미의 새끼포식장면을 포착했어요. 극한 스트레스에서나 벌어지는 이례적인 현상이라는 가설에 금이 지지직 간 것입니다.

보노보는 침팬지와 함께 도구를 쓸 줄 아는 유인원으로 알려져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 홈페이지

연구진은 암컷이 제 새끼를 먹는 것이 일종의 패턴에 따라 진행되는 정례적 행사일수도 있다는 단서를 찾아냅니다. 우두머리 암컷이 식사모임에 참여하고 나아가 상황을 주도하는 정황까지 확인됐다는 거죠. 가령 왐바에서의 제 새끼를 식사거리로 우선적으로 소비한 암컷은 실제로 무리의 우두머리 암컷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두 곳의 현장도 스트레스를 받은 어미의 극단적 이상행동이라기보다는 무리들이 오랜만에 모여서 ‘고기 회식’을 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고 합니다. 참석한 우두머리 암컷이 주도권을 잡고 모임을 주재했고요. 이 가설이 맞다면 새끼의 몸뚱아리는 대자연의 비료가 아닌 동족 사회 화합이라는 당위성을 가진 제단에 희생물로 올려진 셈이 되는 거죠.

보노보가 동물원 방사장에 설치된 줄을 타고 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 홈페이지

후자의 가정이 맞다면, 새끼 보노보는 병이나 사고로 이미 혼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어른들의 식탁에 오른 것일까요? 아니면 멀쩡하게 상태에서 살해된 것일까요? 연구자들은 후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논문은 이렇게 발견된 세건의 동족포식 사례, 그리고 당시 상황이 전개된 장면으로 보건대, 이는 극한 상황에서의 병적인 일탈이 아닌, 보노보 족속이 보여주는 행동의 레퍼터리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결론을 냅니다.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보노보 어미와 새끼. /샌디에이고 동물원 홈페이지

그러나 극히 일부 사례에 불과한 이 같은 관찰결과를 당장 절대적 결론으로 인식할 필요도 없거니와, 익히 알려진 보노보의 생태에 대한 통념을 뒤바꿀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폭력성이 완연한 침팬지,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오랑우탄과 고릴라에 비해 보노보의 생태가 한결 사회적으로 온건하다는 것은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정론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유인원의 생태 연구는 한편으로는 인류의 생태와 물질·정신적 진화과정에 대한 탐구 과정의 일환입니다. 그런 면에서 더 많은, 다양한 현장을 담은 연구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행동에 대한 원인을 탐구하는 과정에는 인류의 앞날에 대한 열쇠가 들어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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