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Mukbang)은 고유 영어단어로 등재돼있습니다. 한국 문화 콘텐츠가 세계인의 것이 되면서, 굳이 뜻을 달지 않아도 먹방 자체만으로 어떤 뜻인지 인식되고 있어요. 물론 먹방이 인간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오늘은 사마귀와 벌새가 공동 주연한 다소 섬뜩한 먹방 한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심장이 약하거나 예민하신 분은 보지 마시길 권합니다.
일흔(70). 벌새가 1초에 퍼덕일 수 있는 최대 날갯짓 횟수입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이죠. 이 빛의 속도의 날갯짓은 벌새 최대의 생존 무기입니다. 잽싸게 꽃의 꿀을 빨아다니고, 천적들이 잡을 엄두를 못내게 하죠. 방심하는 찰나의 순간의 삶과 죽음을 가릅니다. 이 벌새의 비극은 그 찰나로 인해 시작됐습니다. Z자 형태로 접혀있다 단숨에 펼쳐지는 사마귀의 앞발에 걸리는 순간, 게임은 끝입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마디 사이에 걸리는 순간 먹잇감은 옴싹달싹못합니다. 벌새의 몸을 움켜쥔 사마귀가 가장 먼저 공략하는 곳은 목덜미입니다.
두겹으로 된 턱을 텍사스 살인마의 전기톱처럼 움직여 멀쩡했던 살과 근육을 곤죽으로 만들며 파들어갑니다. 그 순간에도 벌새는 ‘부웅’ 소리를 내는 특유의 날갯짓으로 최후의 저항을 시도합니다. 그 날갯짓이 조금씩 잦아듦과 동시에, 새의 머리부분에서 꼬들꼬들한 쫄면줄기 또는 실지렁이 같은 것이 사마귀의 턱에 물린 채 빠져나옵니다. 아마도 뇌, 혹은 뇌와 연결된 혈관이나 근육으로 보입니다. 이 가엾은 새가 잡히는 순간 단말마에 숨통이 끊겨 생을 마감했다면 차라리 더 낫지 않았을까요. 영화 ‘한니발’에서 보는 이의 소름을 돋게 했던 그 장면, 살아있는 사람의 머리를 뚜껑처럼 열고 뇌를 잘라내 곱창구이처럼 익혀 먹이던 그 장면이 오버랩됩니다. 약육강식의 비정함이 자연의 법칙이라지만, 강자의 약자 포식장면의 적나라한 현장은 늘 가슴 한켠을 아리게 합니다.
사마귀는 괴수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무서운 벌레입니다. 이 한해살이 곤충이 몇해씩 살면서 꾸준히 번식을 하고, 덩치가 1㎝만 커졌다면, 지구촌 먹이사슬의 판도는 완전히 뒤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마귀는 통상적으로 나비, 벌, 메뚜기, 거미 등 벌레들만 먹는 것으로 인식돼왔어요. 곤충 중에는 동급최강입니다. 날개달린 난봉꾼으로 악명높은 말벌도 사마귀의 앞발에 걸리는 순간, 저승행 티켓을 발권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마귀가 말벌을 움켜쥔 뒤 여유롭게 머리부터 야금야금 갉아먹는 유튜브 동영상(Chris Da Crisis)입니다.
오랫동안 곤충계의 제왕 정도로만 알려졌던 사마귀의 식단은 그러나 곤충이나 거미만 아우르는게 아니었습니다. 관찰장비의 발달로 각종 벌레들의 삶의 알려지지 않는 단면이 드러나기 시작했죠. 개구리·물고기·뱀·도마뱀 등 내로라하는 척추동물들까지도 거침없이 사냥한다는 사실이 최근들어 밝혀지기 시작했어요. 척추동물의 전매특허인 단단한 근육과 등뼈가 있으면 뭐하겠습니까. 그것이 바스라지도록 꽉 움켜쥐는 갈고리 같은 앞발과 텍사스 전기톱 같은 턱을 당해내지 못하는데요. 우선 가련한 개구리가 테이블에 오른 사마귀 유튜브 먹방 장면(Seha Foodie)을 한 번 보시죠.
단 2~3분 내에 멀쩡했던 개구리의 살점이 북북 찢겨나가더니 금세 입으로 한번 후루룩 훑은 자몽 껍질처럼 너덜너덜해지고 있습니다. 가련한 개구리는 몸통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는데도 버둥거리며 빠져나가려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야생에는 타임슬립도 없고 극적인 역전도 없습니다. 버둥대는 앞다리의 빨판과 초롱초롱한 눈동자까지 곧 믹서처럼 갈려 사마귀 뱃속으로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의 상황입니다. 이 사마귀가 이 개구리 한마리로 만족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대목입니다. 단지 이 개구리는 벌레 못지 않게 작은 몸집 때문에 이런 화를 당한 것일까요? 꼭 그렇지 만은 않다는 것을 다음의 동영상이 보여줍니다. 사마귀가 식사거리 횡재를 해서 큼지막한 도마뱀을 잡고 포식중인 먹방입니다.
한눈에 봐도 도마뱀의 덩치는, 동족 중에선 작을지언정 사마귀가 손쉽게 사냥할 만한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습니다. 허리춤이 사마귀 앞발 갈고리에 붙들렸을 때 온몸을 뒤틀며 저항했으면, 혹여나 탈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깝게 의심해 볼만한 대목입니다. 그렇지만 그 아귀를 빠져나가기에 단 몇%의 힘이 부족했습니다. 먹으려는 자의 탐욕의 파워가 피하려는 자의 생존의 발버둥을 간발의 차이로 이겨낸 것이지요. 사마귀는 그냥 벌레가 아닌 전투력 만렙의 괴수였습니다. 본능적으로 가장 몸의 약한 부분을 공략합니다. 상대적으로 가는 뒷발 앞의 허리춤이었어요. 말랑말랑한 복부는 속수무책으로 뜯겨나갑니다. 가죽이 벗겨지고 드러난 살과 근육을 마치 싱싱한 게장을 발라먹듯 폭풍흡입합니다. 꼬리는 부질없이 파르르르 움직이고, 거친 숨소리가 모니터 밖까지 들려올듯해요.
냉혹하기로 이름난 파충류 도마뱀의 눈길에는 공포와 절망의 기운이 서립니다. 그럼에도 사마귀는 조금의 틈도 주지않고, 도마뱀의 배를 갉아먹습니다. 결국 마지막 실오라기같은 살점 한 올까지 사마귀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몸이 두동강 나기 직전에 동영상은 마무리됩니다. 2017년 바젤대학은 사마귀의 습성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사마귀의 식습성을 정밀 관찰했더니 최소 열두 종이 작은 새를 사냥해 먹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먹잇감이 된 새의 종류는 24종이나 됐고요. 그런데 이 사마귀 먹잇감 된 새들의 70%가 벌새로 조사됐습니다. 미국에서는 사마귀가 사람들이 벌새를 위해 걸어둔 먹이통이나, 혹은 가루받이를 위해 머무는 꽃술근처까지 가서 매복공격을 벌이는 것으로 확인됐어요. 단순 공격이 아니라 작정해서 찾아가는 기병 스타일입니다. 먹잇감의 행동방식에 따라 자신의 습성을 맞춰가는 거죠.
연구진은 사마귀가 잡은 벌새의 시그니처 메뉴는 ‘뇌’라고 진단합니다. 그 뇌를 빼먹기 위해 눈구멍부터 파고들어가기 시작한다는 내부 매뉴얼조차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 눈구멍은 죽은 시체들을 먹는 스케빈저 동물들이 고기를 탐닉할 때 공략하는 부위중 한 곳입니다. 벌새의 수난은 여러 형태로 만연한 외래침입종 위협의 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십 수 년전에 해충 박멸을 위해 외래종 사마귀를 풀어놓았는데, 이들이 터잡으면서 벌새들을 탐식하기 시작한 거거든요. 벌새의 뇌에 사마귀의 자양강장을 돕는 특수성분이 있는 것일까요? 단지 쫀득하고 부드러운 식감 때문에 선호하는 것일까요?
이런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먹잇감의 특정 성분이 번식에 도움을 주는 사례는 이미 있습니다. 알려진대로 사마귀는 ‘이 죽일놈의 사랑’이라는 드라마 제목에 딱 어울리는 연애를 합니다. 짝짓기 도중 암컷이 수컷을 먹어치우는데 수컷은 머리와 상반신이 이미 암컷의 턱에 갈려 뱃속으로 들어간 상황에서도 꼬리끝의 살과 살을 맞대는 짝짓기에 집중합니다. 사마귀의 ‘이 죽일 놈의 사랑’을 생생하게 포착한 BBC 어스(Earth) 동영상입니다.
이 기괴한 본능을 엽기적 관점에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동물 사이트 ‘크레이지 크리쳐스’에 따르면, 짝짓기에 돌입한 암컷 사마귀의 28%는 바로 수컷의 머리통부터 떼어내 좀비 상태로 만든 뒤 유유히 갉아먹습니다. 꼬리쪽으로는 살과 살을 맞대고 격정의 몸부림을 치는 동시에 위에서 아래로 수컷의 모든 것들을 뱃속으로 쓸어담습니다. 엽기 잔혹 버전의 부부 일심동체라고나 할까요. 실제로 수컷의 몸은 암컷에 유용하게 흡수됩니다. 수컷의 몸뚱아리에 들어있는 아미노산 성분은 암컷의 산란을 매우 활성화시켜, 낳는 알의 개수를 두 배까지 늘려준대요. 어차피 한해살이 곤충이라면, 자신의 몸뚱아리를 희생하는 대가로 자기 유전자를 최대한 구석구석 뿌리는 과감한 베팅을 한 거죠. 가을의 문턱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지금은 사마귀들이 짝짓기에 앞서 가장 활발하게 먹이 활동을 할 시기입니다. 우리가 사마귀보다 훨씬 덩치가 큰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