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나 무리 중에 가장 덩치가 크고 힘도 센 점박이하이에나가 입을 벌리고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라이프치히동물원 홈페이지

정치권에서 날선 말들이 곳곳에서 쏟아져나오는 걸 보면 역시 대선 시즌인가봅니다. 이 와중에 최근엔 한 짐승이 유난히 회자됐어요. 하이에나입니다. 사실 이번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열과 교활과 배신, 협잡, 잔혹의 이미지에다 그리고 썩은시체를 탐한다는 오랜 고정관념 때문에 어디서든 악역이란 악역은 도맡죠. 그런데 하이에나는 참 억울합니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 맞게 본능에 따라서 종족 번식의 대의를 위해 살아갈 뿐인데요. 하여 이번 주에는 하이에나의 한을 풀어주는 이야기로 준비했습니다. 알면 알수록 놀랍고 기묘하고 한편으로는 섬뜩하기도 하며 매력적인 동물, 하이에나입니다.

◇‘대장’은 점박이 하이에나…줄무늬·갈색·꼬맹이도 있어

하이에나 종류중 세번째로 덩치가 큰 줄무늬하이에나. 점박이하이에나보다 작고 온순하지만, 아프리카 뿐 아니라 중동과 인도까지 널리 분포하고 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 홈페이지

키득키득거리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아프리카 사바나를 활보하면서 썩은내가 진동하는 짐승 사체를 아드득 아드득 씹어먹는 모습.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하이에나의 모습이죠. 이 하이에나가 바로 온몸에 점점이 무늬가 찍혀있는 듯한 점박이하이에나입니다. 하이에나 집안을 이루는 4대 천왕 중 단연 최강자입니다. 머리몸통길이는 1.8m에 달하는 몸집 역시 동급 최강이고요.

하이에나 중 가장 덩치가 작은 땅늑대, 일명 줄무늬말승냥이. 점박이하이에나의 채 절반도 되지 않는 아담한 몸집으로 곤충과 새알 등을 먹고 산다. /Alchetron.com

그 외에 덩치는 작되 아프리카와 인도까지 널리 분포하는 흑백 톤의 털을 가진 줄무늬하이에나가 있고, 어깨에서 배에 이르는 길고 덥수룩한 털을 가진 남아프리카의 갈색하이에나가 있죠. 그리고 다른 하이에나보다 몸집이 절반정도에 불과한, 그래서 한편으로는 깜찍해보이기도 하는 가장 조그마한 하이에나인 땅늑대(줄무늬말승냥이)가 있습니다. 이 꼬맹이들의 주식은 흰개미와 메뚜기, 새알입니다. 하이에나라기엔 참 귀엽고 소박한 먹성이네요.

◇청소부라고? 신선한 피와 고기가 더 좋다!

하이에나는 누나 아프리카 물소, 심지어 기린의 뼈까지 바드득 부서버릴 정도로 치악력이 무시무시합니다. 비슷한 수준의 턱힘을 가진 동물로 불곰, 북극곰, 황소상어 등이 꼽힙니다. 이런 강력한 턱힘을 앞세워 주로 죽은 동물의 뼈를 잘근잘근 씹어먹는 청소부 이미지가 강하죠. 사자가 먹고 나면 하이에나가, 다시 그걸 자칼과 대머리수리, 마지막으로 산미치광이가 처리하는 식으로 사바나의 ‘청소부 서열’도 알려져있죠. 하이에나는 죽은 사체를 탐닉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실제로는 갓잡아 펄떡이는 피와 살에 열광하는 천생 맹수일까요? 정답은 후자입니다. 그들 역시 사자·표범·치타와 함께 처절하게 생존다툼을 하며 먹잇감을 찾는 사냥꾼입니다. 마땅한 먹거리가 없을 때 사체를 찾는 것이죠. 사실 그건 사자나 자칼도 마찬가지입니다.

케냐 마사이마라에서 먹잇감을 두고 불구대천의 라이벌인 사자와 하이에나가 거칠게 싸우고 있다. /Alamy

하이에나는 잔혹하지만 영리한 사냥꾼입니다. 힘을 덜 들이고 먹거리를 마련하는 법을 꿰뚫고 있거든요. 바로 출산이 임박한 만삭의 암컷을 노리는 겁니다. 누나 임팔라, 얼룩말 등 출산을 앞둔 어미 초식동물을 찾아 무리지어 끈덕지게 쫓아갑니다. 그리고 분만을 기다렸다가, 아니 심지어 채 분만도 하지 않은 암컷을 무지막지하게 덮쳐 쓰러뜨리죠. 바로 아래 사진처럼요.

/영국 데일리스타 2014년 케냐 마사이마라에서 출산을 앞둔 암컷 얼룩말이 하이에나의 공격에 무참히 희생되는 장면이 야생동물사진작가 마크 몰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동물의 왕국은 약육강식의 비정함이 지배한다지만 지옥도도 이런 지옥도가 없습니다. 하이에나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출산으로 기진맥진해있는 암컷과, 제대로 방어조차 할 수 없는 새끼를 한꺼번에 덮칠 수 있는 냉혹한 일석이조거든요. 사실 만삭의 암컷은 사자나 리카온 등도 마다않고 즐기는 사냥감입니다. 이들은 사자마냥 초원에서만 사냥을 할까요? 다음의 동영상 주인공인 갈색하이에나가 들으면 서운해할 것입니다.

/instagram redheartnature 인스타그램 '레드하트네이처'에 올라온 갈색하이에나의 물개사냥. 남아프리카의 한 해안에서 갈색하이에나가 어미가 보는 앞에서 어린 물개를 습격히 물어죽이고 있다. 자연의 비정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수북하고 기다란 털을 휘날리며 남아프리카 해안을 종횡무진 누비는 놈은 물개들에겐 저승사자입니다. 이제 막 태어나 어미 젖을 먹으며 자라나기 시작한 새끼 물개에 대한 사냥성공률은 100%입니다. 뭍에서 동작이 굼뜬 어미는 고이 품어 세상에 내보낸 아기가 침입자 하이에나의 한끼식사로 전락하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며 절규합니다. 하이에나의 식사는 허겁지겁 이뤄집니다. 이들은 포식자이기도 하지만, 백수의 왕을 자처하는 사자와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라이벌이자 원수입니다. 자신의 구역에서 포식중인 하이에나를 보는 순간 사자의 눈빛은 증오로 번득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먹어치워야 합니다. 그래서 허겁지겁 먹느라 온 얼굴에 새빨간 피를 뒤집어쓰거나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덩이나 내장을 물고 다니는 하이에나를 보는게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핏빛 얼굴’은 강렬한 인상과 키득거리며 웃는 듯한 울음소리와 합쳐져서 하이에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양산하는데 한 몫 하죠.

◇무리 보호, 서열 다툼, 짝짓기와 육아 암컷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고등한 동물일수록 암수의 구분과 성역할을 뚜렷한 편입니다. 특히 사자나 고릴라 등 젖먹이 짐승의 경우는 대개 수컷이 덩치가 크고 힘도 세고 무리에서의 삶을 주도합니다. 이 통념까지도 하이에나 월드에선 전복됩니다. 하이에나 왕조는 철저히 암컷의, 암컷을 위한, 암컷에 의한 집단입니다. 비슷하게 암컷 위주의 사회를 꾸리는 동물로 코끼리가 있는데, 하이에나의 경우 암-수간 위계질서가 더욱 도드라집니다. 수컷보다 덩치가 25%는 더 크고, 파워도 압도하고, 성질도 거칠도 드센 암컷들이 모든 것을 주도합니다. 수컷은 기껏해야 자녀 생산에 일조하는 이상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사바나에서는 허겁지겁 식사를 하느라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된 하이에나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옆으로 또 다른 초원의 청소부 아프리카 대머리수리들이 보인다. /Africa Geographic 홈페이지

하이에나 집단의 속성을 완벽하게 고증한 작품이 바로 월트디즈니 만화영화 라이온킹입니다. 악당사자 스카와 공모해 사자왕국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는 하이에나 삼총사의 카리스마 넘치는 우두머리의 목소리를 기억하시나요?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연기한 사람은 베테랑 흑인여배우 우피 골드버그였습니다. 이 암컷 왕초 아래 똘마니 하이에나와 띨띨이 하이에나(둘 다 수컷)가 꼼짝 못하죠. 그래서 하이에나 왕조의 권력다툼은 암컷들의 독무대입니다. 그 욕망과 파멸의 드라마는 수컷들이 주도하는 사자왕국의 세력다툼 못지 않습니다. 다음에 보실 내셔널 지오그래픽 동영상은 왕국을 호령하던 여왕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판단력과 자제심을 잃고 무리의 골칫덩이로 전락해 결국엔 내쳐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방영한 하이에나 무리의 암투 장면. 냉철한 카리스마로 무리를 이끌어왔던 여왕 하이에나가 폭군으로 변하면서 무리의 골칫거리가 되자 내부 쿠데타에 의해 내쳐서 비참한 종말을 맞는 내용이다. 인간사와 다를바가 없다. /냇지오 와일드 유튜브

◇연구자들에게도 미스터리로 남은 ‘은밀한 생활’

하이에나의 대장 점박이 하이에나가 고양이과·개과·곰과 등 다른 사냥꾼들과 확연히 다른 부분으로 주목받습니다. 바로 생식기관입니다. 젖먹이 짐승의 경우 암컷과 수컷의 몸집이나 생김새가 비슷비슷하더라도 생식기관의 모습을 통해 성별을 구분하는게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법칙이 하이에나 세상에선 간단하게 뒤집힙니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제법 봤다는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초고난도 문제로 꼽히는게 바로 하이에나 암수 구별하기입니다. 암수 공히 가랑이 사이로 최대 15㎝까지 길다랗게 대롱처럼 뻗은 돌출형 생식기관을 가지고 있거든요. 오죽하면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는 ‘비전문가가 하이에나 암수를 구별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질의응답형 기사까지 냈겠어요. 이 쉽지 않은 문제에 대해 미국 와이오밍대의 세라 벤슨-아먼 박사가 힌트를 줬습니다. 기다란 돌출형 생식기관의 끝이 뾰족하면 수컷, 뭉툭하면 암컷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뭉툭하거나 뾰족한 것은 다분히 상대적 개념이기에 100% 들어맞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모양새 때문에 하이에나의 짝짓기는 여느 짐승에 비해 상당한 고난도 기술을 요한다고 연구자들은 말합니다.

편견만 들어내면 하이에나 역시 헌신적으로 새끼를 기르는 이 세상 많은 생명체 중 하나이다. 2009년 덴버 동물원에서 포착된 하이에나 어미와 새끼의 다정한 모습. /덴버 포스트

하이에나 암컷의 돌출형 생식기관은 한편으로는 출산을 할 때 새끼를 몸밖으로 분만하는 통로(산도) 역할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출산 경험이 없는 초보 엄마의 경우 새끼가 질식사해 사산되는 비율이 매우 높다고 하네요. 엄마뱃속에서 태어날때부터 코앞에 닥친 죽음과 투쟁하며 태어난 족속이기에 어느 동물보다도 처절하고 강렬한 삶의 의욕을 보여주는게 아닐까요. 서울대공원 동물원장을 지낸 어경연 세명대 동물바이오헬스학과 교수는 “하이에나는 생활습성은 물론 무리 내 사회성까지 굉장히 복잡다단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표면적인 모습만으로 부정적으로 비쳐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