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물복지라는 개념은 다소 낯설었던 게 사실입니다. 사람들 먹고 살기도 바쁜데 말못하는 짐승들의 마음을 헤아릴만한 시간과 여유가 어디 있겠냐는 거죠. 사람과 사람이 아닌 움직이는 생명체들 사이에는 넘사벽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길지 않은 시간 정말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사람의 소유물이라는 의미가 강한 ‘애완’이라는 단어는 동반자라는 뜻의 ‘반려’로 바뀌었습니다. 거의 모든 지방자치단체에는 동물보호전담부서를 두고 길고양이 보호정책을 펼칩니다. 이제 바닷가재 요리를 해먹을 때도 고통을 느끼며 죽지 않도록 산채로 팔팔끓는 물에 넣는 행위를 금지하는 국가도 나왔습니다. 최근 법무부도 반려동물에 법적 지위를 부여해 함부로 압류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발표했죠. 이런 흐름 동물 복지 최전선 동물원들도 앞장서 동참하는 추세입니다.
동물원 전시 동물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더 향상될 수 있을까요? 그저 병걸리지 않고 목숨 부지할 수 있는 선이면 족할까요? 더 알뜰살뜰하게 살피고 보살필 수 있을까요? 최근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 동양관에서 진행된 작은 시도는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생사(生死)의 차원을 넘어 동물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오욕칠정(五欲七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생명체임을 인지하고 몸 상황에 따른 맞춤형 복지로 세분화하고 있거든요. 주인공들은 세계 동물원 역사상 처음으로 ‘모형 파트너’를 제공받은 수컷 설카타육지거북입니다. 거북은 크게 지구의 대양을 헤엄치며 살아가는 바다거북(turtle)과 뭍에서 사는 육지거북(tortoise)으로 구분되는데요. 설카타육지거북은 몸길이가 최대 1m까지 자라는 제법 육중한 몸집을 자랑합니다.
두 종의 코끼리거북(갈라파고스·알다브라)에 이어 육지거북중 셋째로 덩치가 우람합니다. 식스팩을 연상시키는 탄탄한 등껍질에 위풍당당하고 듬직한 모습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설카타육지거북은 지난해 동물원 곳곳에 흩어져살고 있던 네 마리가 동양관으로 합사됐습니다. 2008년 과천에 온 터줏대감 선임 암컷 한 마리에, 8년 뒤에 들어온 후임 수컷 세마리입니다. 너른 잔디밭과 탁 트인 공간에서 동족들과 동고동락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거북이들은 그러나 고민거리도 안게 됩니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었죠. 느릿하고 순둥한 이미지와 다르게 육지거북들은 활발한 성생활로 이름나있습니다. 특히 혈기왕성한 나이의 수컷 거북들은 넘치는 욕구를 주체하지 못해 바위라도 깨부술 기세로 힘을 과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사랑의 에너지가 한정된 공간에서 표출되면 일정부분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틈만나면 달려들어 사랑을 갈구하는 수컷들의 공세에 시달릴 경우 암컷에게는 또 다른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도 있거든요.
수컷들의 욕구불만과 암컷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동물원 사람들에게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예로부터 농가에서 종돈으로 키우는 수퇘지의 씨를 받기 위해서 암컷과 비슷한 모양으로 만든 인공기구인 ‘의빈대’였죠. 이 의빈대의 개념을 차용해 시멘트와 젯소(석고와 아교를 혼합한 재료), 페인트를 이용해서 거북 등껍질과 무늬와 모양이 빼닮은 인공 등껍질을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많은 동물원들이 사육 동물들의 번식 제한과 욕구 불만 해소 등을 위해서 다양한 방식의 시술을 도입했습니다. 서울대공원의 인공 거북이 등껍질은 전례가 없는 경우로, 동물의 몸에 인위적인 조치를 강제로 취하지 않고 욕구불만 해소를 꾀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같은 시도는 효과를 발휘했을까요? 아직은 본래의 사용목적에 걸맞는 만족할만한 효과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네요. 하지만 파충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거북의 신체 특성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특히 야생의 설카타육지거북 수컷은 짝짓기철에는 주변에 암컷이 없더라도 돌멩이 같은 구조물이나 심지어 같은 수컷에게 달려들정도로 다소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 특별한 구조물을 지켜봤다는 이태원 한국양서파충류협회장은 “법정 사육공간의 제약상 무한정으로 번식을 시키기 어려운 상황인데다, 욕구 불만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호르몬 분비는 거북이 몸에 해로울 수 있다”며 “이런 제반 사안을 지켜보다 고민 끝에 도입한 아이디어로 보이는데 충분히 해볼만한 시도”라고 평가했습니다. 동물들도 식욕·수면욕·성욕 등 본능에 지배되는 생명체이다보니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에 간혹 당황스러울 때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서울대공원 사육사들이 거북이를 위해 마련한 등껍질 모양의 구조물도 너무 야릇한쪽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좀 더 건강하고 스트레스 덜받고 살게끔 고민한 자연스러운 배려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