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날이었던 어제(31일) 우정사업본부가 해양보호생물 시리즈의 하나로 바다거북 네 종류를 등장시킨 우표를 선보였습니다.이름처럼 맹금류를 연상시키는 뾰족한 주둥이가 인상적인 ‘매부리바다거북(대모)’, 가죽옷을 입은 장수처럼 위풍당당한 몸집의 ‘장수거북’, 등갑이 단단한 ‘푸른바다거북’, 유난히 큰 머리가 눈에 띄는 ‘붉은바다거북’입니다.
매부리·푸른·붉은바다거북은 수족관을 찾아 촬영했고, 장수거북은 외국의 사진작가를 통해 사진을 입수해서 우표 도안에 활용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한국의 야생동물’이라고 하기에 바다거북은 좀 낯선게 사실입니다. 아마도 육지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일 겁니다. 바다거북의 이동 스케일은 족탈불급입니다. 대륙과 대륙 사이의 넓은바다, 대양 단위로 이동하거든요. 그래서 ‘한국의 바다거북’이라고 정의내리기보다는, 이들이 다니는 곳중에 우리 바다가 포함돼있다고 보는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제주 해변에 알낳은 거북은 ‘핫걸' ‘쿨가이’들
바다거북에 대한 이미지가 이국적인 까닭중 하나는 자연다큐멘터리를 통해 익숙한 장면 때문입니다. 달빛 희미한 밤, 모래사장으로 기어울라온 암컷이 부지런히 발을 움직여 구덩이를 파고 수백개의 알을 낳고, 얼마 뒤 부화한 새끼들이 천적들의 습격을 피해 바닷가로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모습 말입니다. 이런 장면이 한국에서 펼쳐졌다는 얘기를 좀처럼 들은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실제 한국 바닷가에서 번식한 거북이 있으니 붉은바다거북입니다. 다섯 차례 제주도와 부산의 바닷가에 알을 낳은 사실이 관찰됐고, 그 중 2004년 제주도 중문 앞바다에서는 부화에 성공해 새끼가 바다로 향한 사실까지 확인됐습니다. 많은 바다거북들이 적도와 가까운 열대에서 번식하지만, 붉은바다거북의 산란장소는 그보다 훨씬 북쪽 일본에 있습니다.
이 중 일부가 드물게 제주도까지 와서 2세를 번식한 것이죠. 바다거북 수명은 80살~100살이고, 대략 서른살 무렵부터 성적으로 성숙해집니다. 지금부터 10여년 정도가 지나면 바다거북 특유의 강렬한 귀소본능에 힘입어 다시 제주도 바닷가로 알을 낳으러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기는 까닭입니다. 특히 2004년 번식 당시 모래속 온도가 29도가 넘었다면 기대감은 더욱 커집니다. 붉은바다거북의 암수 결정은 태어날 때 모래 온도에 의해 결정되는데 요약하면 ‘핫걸(Hot Girl) 쿨가이(Cool Guy)’입니다. 온도가 29도면 한 알더미에서 암수 반반씩 나오게 되고 31도 위로 올라가면 모두 암컷, 28도 아래면 전부 수컷이 나오게 되거든요.
◇귀향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다만 실제 바다거북들의 ‘귀향 산란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신중한 편입니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김일훈 박사는 “거북은 자신이 태어난 해변에 대한 충성도가 굉장히 높은데 주변 환경이 관건”이라며 “밤에도 가로등이 훤히 켜져있으면 본능적으로 무서워해 상륙을 꺼리게 된다. 몰려드는 인파도 산란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말했습니다. 김 박사는 “바다거북이 알을 낳기 위해서는 깊이 1m 이상 파들어갈 수 있는 모래사장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곳들은 대부분 해수욕장으로 인파가 몰리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자연번식이 아닌 인공번식으로 바다거북의 부화가 성공한 사례도 있습니다. 해양수산부와 국내 한 민간수족관이 협력해서 매부리바다거북의 짝짓기를 유도하고 인공모래사장을 만들어 암컷의 산란을 유도해 새끼거북의 부화까지 이끌어낸 것인데요. 바다거북은 원래 뚜렷한 계절변화에 따라 발정주기가 오는데, 수족관의 물온도는 1년 내내 일정하기 때문에 암수거북 사이에 ‘불꽃’이 튀게 하는데 제법 고생을 했다고 하네요.
◇열대 바다 살던 거북도 한반도 바다에 나타나
전세계 어디서나 바다거북은 남획과 해양오염에 핍박받는 동물로 뚜렷하게 각인돼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바다거북들이 병들거나 죽은 채 발견되는 사례가 이어지자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돼 우표 모델로 데뷔한 것입니다. 이번 우표에 소개되진 않았지만, 우리 바다에서 서식이 확인된 종류가 또 있습니다. 이름도 이국적인 올리브바다거북입니다. 바다거북치고는 소형종인데 2017년에 동해에서 처음 발견된 이 종은 강원 양양·경북 포항·제주·부산에 잇따라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올리브바다거북도 앞으로 다른 네 종과 함께 해양보호생물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훗날 다시 해양보호생물 우표가 만들어진다면 그 땐 지금처럼 마름모 시트지가 아닌 펜타곤 시트지가 될 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