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 "친일세력·美점령군이 합작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TV조선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최근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표현하면서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는 달라 친일(親日) 청산을 못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우리가 친일 청산을 못해 “나라가 깨끗하게 출발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마치 대한민국 수립 과정에 정통성이 없는 것처럼 말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친일 청산을 공식적으로 하지 않은 것은 북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과 항일 투사들이었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통해 공식적으로 친일 청산을 추진했다. 하지만 북한에는 반민특위도 없었고 공식적인 친일 청산 작업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엔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유일한 합법 정부인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친일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고의적으로 폄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은 우리처럼 반민특위와 같은 공식 기구가 없었다. 친일파를 몰아내고 청산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소련과 사회주의, 공산당에 반대한 반공세력에 대한 축출 작업이 진행됐다. 김일성과 공산당이 몰아낸 반공세력은 주로 지주 세력과 기독교 세력이었다. 이 때문에 친일과 관련된 일부 지주세력이 쫒겨났지만 공식적인 친일 청산은 아니었다.

오히려 북한에선 골수 친일파들이 득세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무용가 최승희다. 최승희는 일제 시대 곳곳을 돌아다니며 천황 폐하를 위하 목숨을 버리라고 선전전을 벌인 대표적 친일파다. 그는 공연 수익금을 일본군에 헌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방 후 친일 행각이 도마위에 오르자 월북한 뒤 승승장구했다. 그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선무용가동맹중앙위원회 위원장, 국립무용극장 총장을 지냈고, 공훈배우와 인민배우란 칭호까지 받았다. 김일성이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남편인 문학가 안막이 반당종파분자로 체포되면서 1967년 숙청됐다. 하지만 친일파라서가 아니라 반(反) 김일성으로 몰려 숙청된 것이다.

반면 1948년 출범한 대한민국 초대 정부는 이승만 대통령, 이시영 부통령, 신익희 국회의장, 이범석 총리 체제였다. 이승만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었고, 신익희는 임시정부 내무총장, 이시영은 임정 재무총장이었다. 이시영은 우리나라 최대 독립운동가 집안인 이회영 선생 일가다. 이범석 역시 광복군을 이끈 장군이다. 정부 핵심인사 대부분이 임정 출신 독립운동가와 항일 투사들이었다. 이런 정부를 친일로 몰아붙이고 깨끗하게 출발하지 못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승만 정부는 출범한 지 두 달만에 반민특위를 구성했다. 이듬해부터 친일 조사 활동에 들어가 친일 활동 전력자 등 221건을 기소했다. 다만 이들에 대해 징역형 등 직접적인 체형은 14건에 그쳤다. 경찰에 남아있던 친일파 일부가 반민특위 핵심 인사들에 대한 암살을 모의하는 등 반발도 이어졌다. 여순 사건 등 국내 공산주의 세력이 일으킨 무장 폭동을 제압하기 위해 일제 때 경찰과 군에서 일했던 인사들을 다시 기용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친일파가 해방 이후에도 지배 체제를 유지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1980년대 운동권에서 널리 읽혔던 ‘해방 전후사의 인식’에 담긴 왜곡된 역사관이 이 지사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친북적 성향이 강했던 NL운동권은 우리 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마치 북한에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하기 위해 친일 프레임을 앞세워 왔다.

이승만 대통령은 헌법 제정 과정에서 당시 두번째로 큰 정당이었던 한국민주당(한민당)과 결별했다. 한민당은 미 군정 당시 실질적 여당 역할을 했었다. 좌파 진영에선 친일 성향의 지주 세력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승만 정부를 친일 정부라고 하는 것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민당은 이후 야당이 됐고 신익희가 이끌던 대한국민회 등과 합쳐 민주국민당을 만들었다. 이 민주국민당이 나중에 민주당, 신민당 등을 거쳐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으로 이어진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 정당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한민당이 오히려 현 민주당의 뿌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