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잘 아시는 것처럼, 장관은 국무위원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무위원’이라는 표현은 있어도 ‘장관’이란 명칭은 없다. ‘국무위원’이란 표현은 16번이나 나온다. 헌법 제83조를 보면 ‘국무회의는 대통령·국무총리와 10인 이상 20인 이하의 국무위원으로 구성한다’고 돼 있다. 우리나라 정부 부처 장관은 10명에서 20명 사이로 둘 수 있다는 뜻이다. 이어서 헌법 제84조를 보면,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이어 헌법 제88조를 보면 ‘행정 각부의 장은 국무위원 중에서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간단히 말해 장관은 대통령이 마음대로 임명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대통령 독단(獨斷)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국회법’, 그리고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을 하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인이 지명하는 고위공직자, 즉 국무위원, 다시 말해 장관 후보자를 국회가 사전에 검증할 수 있도록 인사청문을 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는 야당의 동의 없이, 즉 청와대와 여당 독단으로 임명한 장관급 이상 고위 인사가 이달까지 29명을 채웠다. 곧 서른 명이다. 비슷한 사례로 노무현 정부 때 3명, 이명박 정부 때 17명, 박근혜 정부 때 10명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 독단이 역대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전부 합친 것과 같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가장 최근 사례가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그는 전문성도 없고, 도덕성도 ‘빵점’이라는 비난과 함께 청문회에서 제대로 해명을 하지도 못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 10일 그를 문화부 장관에 임명했다. 그리고 연휴가 끝난 오늘 15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은 정의용 외교, 황희 문화, 권칠승 중기, 세 부처 장관에게 임명장을 줬다.
황희 장관은 온갖 의혹투성이에 갖은 비리 혐의가 백화점을 차린 듯 했다. 추미애 전 장관 아들의 휴가 특혜 의혹이 불거졌을 때 내부고발자인 당직사병의 실명을 공개했을 뿐만 아니라 ‘단독범’ ‘배후세력’ 같은 말을 사용하면서 인신공격을 했다. 또 민주당 의원 시절에는 지역구인 서울 양천구에서 그의 보좌관이 재건축이나 발전소 문제 등을 놓고 여론몰이를 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2018년 연세대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은 여러 표절 의심 사례가 나왔을 뿐만 아니라 국문으로 쓰고 국문으로 심사를 했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번역을 맡겨 최종 제출만 영문으로 했다는 ‘대리 번역 의혹’도 사고 있다. 또 교육 평준화를 주장해온 그였는데 딸은 자사고를 거쳐 외국인 학교에 재학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또 딸의 고액 학비로 논란을 빚었으며, ‘생활비 월 60만원’ 얘기는 온 국민들로 하여금 쓴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그는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있는 동안 여러 차례 병가(病暇)를 내고 해외여행을 다녀왔으며, 가족 여행을 갈 때 관용 여권을 써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누가 봐도 문화장관으로서는 부적격인 것 같은데, 문 대통령은 임명장을 준 것이다. 이와 관련 오늘 아침 한국일보는 눈에 띄는 기획 기사를 내보냈다. 문재인 정부가 독단으로 처리한 장관 인사 29명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인사청문회법을 보면 국회에서 인사 청문 절차가 제대로 완료되지 않으면 대통령은 10일 이내에 기한을 정해서 인사청문 보고서를 다시 보내달라고 국회에 요청하게 된다. 이른바 ‘재송부 요청’이다. 이때 시간 말미를 주는데, 얼마나 시간을 줄지는 10일 이내에서 대통령 재량에 따른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부여한 재송부 기한은 1인당 평균 4.8일이었다. 닷새가 채 되지 않았다. 이것은 ‘야당을 설득하고, 민심에 설명하는 충분한 시간을 줬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청문보고서 마감 기한이 끝나면 더 기다리지 않고 다음 날 즉각 임명하는 패턴이 문재인 정부 내내 반복됐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그렇게 임명된 장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여러분의 기억을 돕기 위해 빠르게 명단을 살펴보겠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강경화 외교장관, 송영무 국방장관, 이효성 방통위원장, 홍종학 중기부장관, 양승동 KBS사장, 이석태 헌법재판관, 이은애 헌법재판관, 유은혜 교육장관, 조명래 환경장관, 조해주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김연철 통일부장관, 박영선 중기부장관, 이미선 헌법재판관, 문형배 헌법재판관, 윤석열 검찰총장, 조국 법무장관, 최기영 과기부장관, 이정옥 여성부장관, 한상혁 방통위원장,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은성수 금융위원장, 추미애 법무장관, 이인영 통일부장관, 박지원 국정원장, 변창흠 국토부장관, 박범계 법무장관, 정의용 외교장관, 그리고 앞서 말씀 드린 황희 문화부장관이다.
이 신문은 “더 눈에 띄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 변화”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권 초반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소상히 설명했다. 최근 들어선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7년6월 강경화 외교장관을 임명할 당시 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외교 장관 자리를 도저히 비워 둘 수 없는 상황이다. 야당 쪽에서 널리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대통령과 야당의 인사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선전포고’라거나 ‘협치는 없다’는 건 아니다.” 2017년7월 송영무 국방장관 임명 때는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새 국방부 장관을 임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사실 참 애가 탔다.” 그렇다. 그때까지만 해도 야당에게 ‘널리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면서 야당을 달래는 발언을 할 줄 알았고, ‘참 애가 탔다’면서 대통령의 입장을 이해해달라는 간접적인 주문을 할 줄도 알았다.
문 대통령은 크게 변하기 시작한다. 그 이듬해인 2018년10월 유은혜 교육장관 임명 때는 이렇게 말했다. “국회에서 인사 청문 결과 보고서가 채택된 가운데 임명장을 줄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주 적임이라고 생각한다. 인사청문회 때 많이 시달린 분들이 오히려 일을 더 잘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당시에도 대통령 발언은 논란이 되면서 여러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청문회 때 시달릴수록 더 일을 잘 한다’는 대통령의 인식 때문에 국민들이 혀를 차기도 했다. 문 대통령에게는 그게 전설이라니 참 별난 전설도 다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2019년9월 조국 법무장관을 임명할 때 전혀 달라진 문 대통령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때 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개혁성이 강한 인사일수록 인사 청문 과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회 인사 청문 절차가 제도의 취지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다. 국민 통합과 좋은 인재 발탁에 큰 어려움을 되고 있다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다.” 그때도 문 대통령은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온갖 비리를 전혀 보지 못하고 대신 이를 비틀어서 거꾸로 말하기를 “개혁성이 강한 인사일수록 인사 청문 과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사 청문 절차가 제도의 취지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다”면서 제도 탓을 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그렇다. 한 달 남짓 만에 조국 장관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으며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문 대통령은 야당을 설득하고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포기하고 있으며, 다시 말해 협치를 팽개치고 대신 ‘인사는 나 홀로 하겠다’는 인사 독단을 밀어붙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4·15 총선 이후 ‘거대 여당’이 탄생한 뒤로는 청문보고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할 필요성조차 사라졌다. 왜냐하면 18개 상임위원회를 독식한 여당이 단독으로 청문보고서를 채택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임명된 사람이 시간 순서대로 이인영 통일장관, 박지원 국정원장, 변창흠 국토장관, 정의용 외교장관, 황희 문화장관이다.
작년 총선 전에는 ‘국회 청문 보고서 채택’이 불발되면 바로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그렇게 임명된 장관급 고위 공직자가 무려 23명에 이른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이자 마지막 사례가 바로 추미애 전 법부장관이다. 문 대통령은 청문보고서 재송부 기한을 2020년1월1일까지로 줬고, 그 다음날 바로 임명했다. 이렇게 재송부 요청 마감일 바로 다음날 임명장을 줘버린 경우가 13명이나 된다. 문 대통령이 국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오늘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국회 인사 청문의 결과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문재인 정부의 인사 독주, 이제 1년 남았다. 그런데,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의 사례를 모두 합친 것을 곧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