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전 국회의장. /김형오 의장 제공

김형오 제18대 국회의장이 11일 “‘대통령'이라 부르고 ‘님’자까지 붙이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착잡한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면서 ‘추미애 사태’ 등 각종 문제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 전 의장은 이날 본지와 가진 전화 통화에서 “이대로 있으면 여야를 떠나 그간 수십년간 쌓아온 대한민국의 정치가 무너지고 나라가 위기에 처할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어 고심 끝에 펜을 들었다”면서 이날 페이스북에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께’라는 200자 원고지 17매가 넘는 글을 올린 이유를 설명했다.

김 전 의장은 또 통화에서 “나는 문 대통령에게 악감정이 없고 이 분과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라면서 “정치가 어지러운데 이걸 책임질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니고 대통령이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글을 쓴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 경기 화성시 LH 임대주택 100만호 기념단지인 동탄 공공임대주택에서 열린 살고 싶은 임대주택 보고회에 참석해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김 전 의장은 이날 글에서 “(대통령은) 어제 말 많은 공수처법을 개정 통과시켰다”면서 “며칠 후면 윤석열 검찰총장을 해임하겠지요, 만만한 야당을 상대하니 이제 거칠 것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만 자르면 만사형통인가요, 아니면 ‘새로운 시대’로 가기 위한 진입 장벽을 제거한 건가요”라고 했다.

이어 “대한민국이 탄생한 이후 역대 가장 힘센 대통령이 되셨다”면서 “아마도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어느 한 시점, 그리고 박정희 유신 말기 때를 제외하면 이처럼 강력한 권한을 쥔 대통령이 이 땅에는 없었을 것”이라고했다. 그러면서 “입법·행정·사법의 삼권은 말할 것도 없고 권한과 영향력을 미치는 모든 조직·세력·기구도 모두 친여 친청와대 친문재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김형오 전 의장은 “오백 년 조선 왕조의 어떤 임금님보다도 막강하지 않습니까”라면서 “그런 제왕적 권한을 가졌는데도 대통령의 표정은 밝지 못합니다. 뭔가 불안해 보이고 과거의 선한 모습도 제 눈에만 안 보이는 걸까요. 나라와 국민을 위한 노심초사인가요.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나요”라고 했다.

추미애(왼쪽) 법무부 장관이 지난 7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답변하고 있다. 이날 추 장관은 법무부 입장문 유출 논란을 제기한 김태흠(오른쪽) 미래통합당 의원에게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망신 주기 위한 질문은 삼가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야당 의원들이 항의했고, 회의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추 장관에게 "정중하게 답변하라"며 공개적으로 주의를 줬다.

그는 “최근 추미애 장관의 행태는 참으로 가관”이라면서 “보기에 민망하고 이 나라 국민으로서도 부끄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추 장관은) 눈 하나 깜짝 않고 헌법과 법률, 관련 규정을 무시하거나 편의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면서 “처음엔 대통령의 뜻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광풍을 휘몰아치니 이제는 호랑이 등에 탄 형국이 되어버렸다. 달리는 호랑이가 절벽에 떨어지기 전까지는 내릴 수 없는 신세 말이지요”고 했다.

그는 “절제를 모르는 권력의 종말이 어떠하다는 건 잘 아실 것”이라며 “문득문득 유신 말기 상황이 떠오른다”고 했다. 이어 “충신 세 명만 있어도 백제는 망하지 않았고,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는 잿더미가 되지 않았던가요”라고 했다.

김 전 의장은 “검찰개혁이 도대체 뭔가”라면서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엄정한 수사를 하라고 대통령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람을 내쫓거나 헌법에도 없는 조직을 만들어 헌법기구가 힘을 못 쓰게 하는 것이 정의롭고 공정한 일인가요. 공수처법을 강제로 제정하더니 이제는 만천하에 웃음거리가 되는 방식으로 다시 개정했다”고 했다.

또 “국민 앞에 수없이 한 공언을 스스로 뒤집고, 시행도 해보지 않은 채 서둘러 고쳐야 할 절박한 사정이 세간에 회자되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인가요. 공약하신 대통령 측근이나 친인척 비위를 다룰 특별감찰관은 지금까지도 임명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대신 공수처를 통해서 정권에 ‘삐딱한’ 판사·검사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것인가”라고 했다.

여권이 최근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민주적 통제’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김 전 의원은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을 윽박지르는 것이 민주적 통제이냐”면서 “어느 사전에도 없는 짓을 스스럼없이 해대는군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설마하니 공산주의자들이 이와 유사한 말을 간혹 쓰는 것을 빌려온 것은 아니겠지요”라며 “선출된 사람(권력)이 임명된 사람(권력)보다 우위에 있다면 법무장관 역시 임명된 자이므로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안하무인 격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데 제동을 걸지 않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인가요”라며 “선출된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자기가 임명한 장관에게 끌려가는 듯한 모습은 장관에 대한 대통령의 민주적 통제가 고장났음을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통령이 장관 눈치를 보고, 누가 대통령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떠도는 것은 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검사 윤석열을 졸지에 유력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야당입니까, 추미애입니까. 만약 청와대에 유능한 참모가 있다면 이것만으로도 그녀를 벌써 해임했을 것입니다. 또 대통령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국회에서 해야 함에도 국회는 청와대의 부속품으로 취급당하고 있습니다. 민주적 통제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국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러스트= 조선일보 이철원

최근 국회 상황이 ‘일당 독재’와 같다는 지적도 했다.

그는 “3년여 전 대통령은 국민의 41% 지지로 당선됐다. 금년 총선에서 야당은 또 국민의 41% 지지를 받았다”면서 “의석수는 여당과 두 배 가까이 차이나지만 득표율은 8% 남짓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41%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41% 야당은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서 “최근의 국회 모습은 일당독재와 다름없다”고 했다.

합치도 강조했다. 김 전 의원은 “같은 득표율을 받은 대통령께서 상련(相憐)까지는 아니더라도 야당을 야당으로 취급해주어야 한다”면서 “야당 생활을 해보지 않았습니까. 헌법 법률과 제도 때문에 그렇다고 치부해버리지 마십시오. 그런 생각에 잡혀있는 한 곧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결국 추미애 쇼는 대통령 리더십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면서 “대통령의 어정쩡한 태도가 이를 부추기기도 했다”고 했다. 이어 “이로 인해 권력누수 현상(레임덕) 없는 후반부를 구가하려다 엄청나고도 급격한 레임덕을 맞이하게 됐다”며 “퇴임 후의 안정을 확보하려 이런 모험들을 감행했지만 그마저 보장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김 전 의장은 “이제 정기국회가 끝나고 윤석열을 아웃시킨 후 추미애도 해임할 것”이라며 “장관 몇 더 얹혀서. 그리곤 개혁의 일 단계가 완료되었다고 공표하겠지요. 추미애 행태는 한마디로 국민을 짜증나게 했습니다. 정권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게 했습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은 잠시 어리석은 것 같지만 결코 어리석지 않습니다. 결정적 시기에 국민은 매우 냉정하고 현명하니까요”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는 글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대통령 개인의 나라도, 청와대나 문빠나 보이지 않는 검은 세력의 나라가 결코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라 노심초사가 클 줄 압니다. 이제는 하나씩 내려놓을 때입니다. 권력의 하향점에선 곡선이 아니라 직선으로 내려갑니다. 이 나라의 자랑스러웠던 많은 부분을 훼손시킨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