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하면서 여당 내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집권 2년간 이어진 당정(黨政) 관계에 근본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제 아래서 당정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다만 여당에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대통령 측근들이 나서 ‘내부 총질’ ‘자기 정치’로 몰아갔던 수직적 당정 관계가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증폭시키고 여권의 분열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11일 물러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포함해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국민의힘엔 2명의 당대표와 3명의 비상대책위원장이 거쳐갔다. 23개월 만에 집권 여당 대표가 5번 바뀐 셈이다. 대선 승리를 이끈 이준석 전 대표는 대통령 측근들과 충돌하다가 윤 대통령 취임 두 달도 안 돼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돼 사실상 쫓겨났다. 직후 권성동 원내대표 직무대행 체제, 주호영 비대위가 출범했지만 각종 논란에 각각 한 달도 안 돼 끝났고, 이후 당은 정진석 비대위 체제로 6개월간 운영됐다.
2023년 3월 열린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대표와 경쟁했던 비윤계 후보들이 집단 공격 대상이 됐다. 50명 가까운 친윤계 초선 의원은 나경원 전 원내대표의 당대표 불출마를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렸고, 대통령실은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안철수 의원에 대해 “안 의원이 윤심은 아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친윤계 지원으로 당선된 김기현 대표도 작년 12월 임기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하면서 총선을 100여 일 앞두고 투입된 한동훈 위원장이 선거를 지휘했다. 여당 관계자는 “당원들이 뽑은 당대표 2명이 별다른 설명도 없이 물러나고 대통령 임기 전반 11개월을 여당이 비대위로 운영됐으니 제대로 된 총선 전략이 있었겠느냐”고 했다.
총선 과정에서 몇 차례 지지율 회복 국면이 있었지만 대통령이 사실상 ‘찬물’을 끼얹었다는 게 수도권 출마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작년 11월 김 여사 디올백 수수 의혹이 불거졌지만 윤 대통령은 두 달여간 침묵했다. 지난 2월에야 대통령이 KBS 대담에 나섰지만 “매정하게 (가방 전달자의 만남 요청을)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된다”고만 언급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자 전통 지지층 사이에서도 “총선을 포기한 것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종섭 전 호주 대사의 갑작스러운 출국과 귀국,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설화(舌禍) 수습 과정에서도 대통령실은 결국 여당의 요구를 수용했지만 타이밍을 한참 놓친 뒤였다.
여당에선 총선 막바지 윤 대통령이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을 수습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선거를 9일 앞둔 지난 1일 윤 대통령은 TV 담화를 통해 핵심 쟁점인 2000명 증원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의료계가 통일된 대안을 가져오면 논의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지만 의료계가 반발하며 타협을 이루지 못했다. 수도권 출마자는 “이종섭·황상무 사퇴로 직전 주말 동안 좋아졌던 여론이 51분 담화를 계기로 한순간 원점으로 돌아가더라”고 했다.
이번 총선에선 사과, 대파 가격 등 물가 문제도 화두가 됐다. 수도권 후보들은 유권자들로부터 “장 보러 가면 2번(국민의힘) 찍을 마음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다 대통령실이 “채소 가격은 문재인 정부 때 더 비쌌다”고 해명하자 여당도 따라서 전 정부를 공격하는 메시지를 냈다. 민주당의 ‘내로남불’에 분노하는 강성 지지층은 환호했지만 좌우, 진보·보수로 분류하기 어려운 중산층, 자영업자들이 원하던 해결책은 아니었다. 전직 지도부 인사는 “여당이 대통령실·정부보다 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정권 심판론을 분산·흡수했어야 하는데 당정이 똑같은 목소리만 내니 30%대인 대통령 지지율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