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만나 동맹국으로서 책임과 역할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 안보 문제, 대미 투자의 총액과 방식 등 경제·통상 분야 등에서 양국 간 이견도 논의됐다.

안보 분야에선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포함한 국방비 증액, 주한 미군 역할 조정, 미국의 인도(아시아)·태평양 전략에 대한 한국의 공조 확대 등이 쟁점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한국이 “1년에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한국이 부담하는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10억달러를 조금 넘는데, 그 10배 가까이를 요구한 것이다. 다만 정상회담 전 고위급 협의와 실무 협의를 통해 한국의 국방 예산 자체를 단계적으로 증액하고, 미국산 무기 구매를 늘리는 방안이 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공군 1호기서 질문받는 李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각) 일본 도쿄에서 미국 워싱턴DC로 향하는 공군 1호기 안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어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우리 외교의 근본은 한미 동맹”이라고 말했다. / 연합뉴스

중국 문제도 안보 분야 쟁점 중 하나였다. 미국 국방부는 사전 협의에서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대해 주한 미군 구성과 운용을 대북 억제에서 대중 억제 중심으로 변경하고, ‘한미 상호 방위 조약’상의 공동 대응 범위가 한반도만이 아니라 인도·태평양 전역이란 점도 분명히 하기를 원했다.

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을 굳건히 지키면서도, 이웃 국가로서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미국에 설득하려 애쓴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기내 간담회에서 “한·미·일 협력도 중요하고 한일, 한미 협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완전히 적대적으로 전환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라면서도 “조정하는 것도 협상”이라고 말했다. 또 이 대통령은 “주한 미군의 미래형 전략화, 그런 얘기는 우리 입장에서 필요하다”고 했다. 주한 미군에 육·해·공과 우주·사이버·전자전·정보 등 다영역의 작전을 할 수 있는 다영역효과대대(MDEB)가 배치되는 것 등은 필요하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대북 정책 공조도 회담 의제에 올랐다. 이 대통령도 정상회담 전 대북 정책 논의와 관련해 “제한 없이 필요한 얘기는 다 해 볼 생각”이라며 “길을 한번 만들어봐야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한미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경제·통상 분야 논의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대미 무역 흑자국이란 점을 들어, 한국이 더 많은 대미 투자와 시장 개방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해왔다. 반면 한국 정부는 한국의 경제 규모와 통상 구조, 국내 여론 등으로 인해 미국 정부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말 한미 관세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설정했던 시한에 맞춰 급하게 타결된 측면이 있었다. ‘한국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고, 미국은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춘다’는 큰 틀만 정했을 뿐 협의하지 못한 문제가 많았던 것이다.

특히 쌀·소고기 수입 확대를 포함한 농축산물 시장 개방에 대해서는 회담 전부터 불편함이 노출됐다. 백악관은 줄곧 한국이 쌀이나 농산물에 “역사적인 개방”을 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기내 간담회에서 “이미 큰 합의를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다”며 “쉽게 ‘바꾸자니까 바꾸겠습니다’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싶다”라고 했다.

관세 협상 타결을 이끌어냈던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도 양국 간 해석이 달랐던 현안이다. 3500억달러는 한미 조선 협력 펀드 1500억달러, 조선업 외에 반도체와 원전, 이차전지, 바이오 등 분야에 대한 대미 투자 펀드 2000억달러로 구성된다. 문제는 미국은 펀드 투자처를 트럼프 대통령이 지정하고 수익의 90%는 미국 내 재투자된다고 주장해 왔다. 또 대출이나 보증보다는 직접적인 출자를 원하고, 출자 금액을 구체적으로 명문화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번 회담 전 우리 측은 대통령실이 각 기업의 대미 직접 투자(공장을 짓는 그린필드 투자) 계획을 취합해 미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대미 3500억달러 펀드와 별도다. 방미에 동행한 기업들은 약 1500억달러(약 209조원) 안팎의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할 계획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