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이 31일 타결되면서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50여 일 넘게 미뤄져 온 한미 정상회담도 조만간 개최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협상 타결 소식을 알리면서 “2주 내에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에게 ‘다음 주라도 날짜를 잡으라’고 했다고 한다”며 “곧 한미 외교 라인을 통해 구체적 날짜와 방식 등이 협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첫 정상회담은 8·15 광복절 전후 개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각각 지난 6월 4일과 올해 1월 20일 취임하고 지난 6월 6일 첫 정상통화를 했지만, 잇따른 돌발 변수로 정상회담이 연기돼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16일 7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캐나다를 방문했지만,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전쟁을 이유로 급히 귀국해 만나지 못했다. 그달 말 네덜란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도 한미 정상이 만날 무대로 거론됐으나 이번에는 이 대통령이 중동 정세 등을 고려해 불참했다. 최우방인 미국과의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못하면서 일각에선 “한미 관계를 빨리 정상궤도에 올려놔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관세 등 경제·통상 협상이 일단락된 만큼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외교·안보 현안을 포함해 ‘한·미 동맹 현대화’ 등 한·미 관계 전반이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타결된통상 협상의 세부 내용을 확정하는 등 후속 논의도 이뤄질 전망이다.
우선 한국 국방비 인상안이 주요 의제로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국방비를 GDP(국내총생산)의 5% 수준까지 올릴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한국 국방비는 61조2000억원으로, GDP 대비 2.3%다. 정부는 국방비를 단계적으로 인상해나갈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9일 “국방비 전체는 국제적 흐름에 따라 늘려나가는 식”으로 협의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나토 회원국들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인상 요구에 국방비를 5%까지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확대 적용하는 등의 ‘동맹 현대화’ 관련 협의도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는 이달 한미 외교차관 회의와 국장급 회의에서 주한 미군 역할을 기존 대북 억제에서 대중 견제로 재조정하는 방안 등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한미 동맹을 안보뿐 아니라 AI, 양자컴퓨터 등 첨단 기술 분야로도 확대해 ‘미래형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발전시키자는 입장이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 공급망이 경제 산업뿐 아니라 국가 안보 문제로 다뤄지고 있어 이 부분과 관련한 협력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북핵 협상 재개 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최근 김여정 북한 당 부부장이 “한국과 마주할 일이 없다”는 대남 담화를 냈지만 “평화적 분위기 안에서 남북의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면서 대화 재개 노력을 계속해나갈 뜻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일관되게 “북한 김정은과 사이가 좋다. 만날 것”이라고 말하면서 미·북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외교 소식통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북 유화 메시지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조현 외교부 장관은 31일(현지 시각) 워싱턴 DC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조 장관은 이번 회담에서 한미 정상회담 개최의 일정과 의제를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은 “대미 협상은 관세 협상이 끝났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주한 미군 방위비 인상, 미국 무기 구입, 주한 미군 역할 재조정 등 한미 동맹 현대화와 관련된 각종 청구서가 날아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