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대사가 공석이면 ‘외교 관계에 의한 빈 협약’에 따라 공사나 차석 대사가 대사의 역할을 대리대사로서 ‘임시로’ 대행할 수 있다. 하지만 대사대리는 주재국 최고위급 인사 접촉, 중요 정보 수집 등 대사의 역할을 온전히 할 수 없기 때문에 외교 공백이 발생한다.

대사는 파견된 외교관들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주재국의 국가원수에게 신임장을 제정할 수 있다. 빈 협약 제13조에 따르면, 대사는 신임장을 제정하거나 신임장의 사본을 외교부에 제출함으로써 주재국에서 공식적인 직무를 수행한다. 이를 통해 대사는 자국을 대표하는 ‘공식적인 외교 사절’로서 법적 지위를 갖게 된다. 주재국에서 ‘국가원수의 분신’으로서 활동하고 대우받으면서 정부의 입장을 상대국의 최고위층을 비롯해 적재적소에 전달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 정부 대표단이 지난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상 협상 중 막판 담판을 벌일 때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 옆에 배석한 인물은 야마다 시게오(山田重夫) 주미 일본 대사였다. 야마다 대사는 최근 ‘관세 전쟁’ 국면에서 미 연방정부와 의회, 주(州) 정부 등을 상대로 광범위한 외교전을 펼치며 대미 협상 ‘지원 사격’을 했다. 하지만 주미 한국 대사관은 조현동 대사가 한참 협상이 진행 중이던 이달 중순 급히 귀임하게 돼 대사 공석 상태였다. 주미 정무공사가 대사대리로 있었지만 최고위급 접근이 어려워 야마다 대사같이 ‘외교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공사는 원천적으로 대사와 급이 다르다. 이 같은 차이로 공사는 대사 공석 시 대사대리 역할을 하더라도 주재국의 대통령이나 총리 등 최고위급 인사와의 공식 면담 요청을 하기 어렵다. 요청을 하더라도 ‘격(格)’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대리대사는 국가 간 중요 조약 체결권, 고위급 전략·정책 협의 등 대사의 고유 권한을 행사하는 것도 제한된다. 외교 소식통은 “말 그대로 대사관은 대사가, 총영사관은 총영사가 있어야 움직인다”면서 “대사가 없어도 대사관의 기본 업무는 돌아가겠지만 국익이 달린 결정적인 현안은 공사가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사의 존재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