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 20일 경기 연천군 임진강 일대 석은소 훈련장에서 열린 한미 연합 제병협동 도하훈련을 마친 장병들이 연합부교를 건너고 있다. 2025.3.20/뉴스1

미국 국무부가 “한반도에서 미군과 한국군 간의 역할과 책임을 재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협의들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25일 밝혔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동맹 현대화 협의’에 대한 본지 질의에 “우리가 70년간 유지·발전시켜 온 한미 동맹이 변화하는 역내 안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중국이 위협으로 떠오른 현실에 맞게 동맹의 태세를 변경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미국 정부가 ‘미군과 한국군 간의 역할·책임 재조정’에 대해 한국과 협의를 한다고 공식적으로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한미 외교 당국은 주한 미군 재조정 문제 등이 가진 민감성을 의식해 직접적 언급을 피해왔다. 국무부가 재조정을 명시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재조정 협의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앞서 미국은 이달 중순 열린 한미 협의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태평양에 확대 적용하는 등의 ‘동맹 현대화’ 조치를 요구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3조는 한미 중 한 나라가 ‘태평양 지역에서 무력 공격’을 받으면, 다른 나라도 이를 ‘자국에 대한 위험’으로 인정하고 ‘행동할 것’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만 유사시 등 미·중이 역내에서 충돌하면 한국도 역할을 하라는 뜻이다. <2025년 7월 24일 자 A1면>

이와 관련해 국무부는 “우리는 인도·태평양의 안보, 안정, 번영을 유지하는 데 있어 한국의 핵심적 역할을 환영하고 완전히 지지하며, 이는 협력의 추가적 기회를 준다”고 했다. 한국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전역의 안보에도 새로운 역할과 기여를 해야 한다고 못을 박는 듯한 표현이다.

국무부는 양국이 “확장 억제를 유지하고 한국의 ‘방위 비용 분담’을 늘릴 필요성에 대해서도 인정했다”고 했다. 과거에는 ‘방위 비용 분담 증가’가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 근거한 주한 미군 주둔비 인상을 뜻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국방 예산을 현재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2.3% 수준에서 5% 수준으로 인상하고, 미국의 전략 자산 전개 비용도 분담하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美 “한국 추가적 역할 있다”… 사실상 ‘中 견제 동참’ 요구

그래픽=김현국

미국 국무부는 25일 성명에서 “한미 동맹은 1953년부터 동북아시아와 더 넓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안보·번영의 핵심축(linchpin)이었다”며 “동맹이 변화하는 지역 안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6·25전쟁 직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될 때는 미국이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동맹이었지만, 중국의 위협이 증가한 지금은 동맹의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국무부는 “(한미) 양측은 동맹의 미래 방향에 대해 공유된 인식을 기반으로 협의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면서 그 방향에는 “진화하는 역내 안보 환경 속에 동맹의 역량과 태세를 강화하는 것”이 포함된다고 했다. 또 “이런 협의들을 통해 (한미) 양측은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한미가 협의를 착수했고, 여기에서 대만 유사시를 포함한 중국 문제도 논의했다고 풀이할 수 있다.

국무부가 “한반도에서 미군과 한국군의 역할과 책임을 재조정”한다고 표현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미국이 대북 억지보다 중국 견제를 우선하는 방식으로 주한 미군의 역할, 규모, 작전 범위 등을 변경하는 ‘주한 미군 재조정’을 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미국이 ‘한국군의 역할과 책임’도 거론한 것은 여러 시사점을 가진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이 국방비를 증액해 미국의 재정적 부담을 덜어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숫자’에 민감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로, 우리 정부도 단계적 국방 예산 증액을 계획 중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25일 긴급 통상 대책 회의 후에 가진 브리핑에서 “안보 분야 패키지의 협의가 다른 분야(통상 협상)보다는 조금 더 안정적”이라고 했다.

미 국방부는 한국의 군사적 역할·기여 확대도 원하고 있다. 미군이 중국에 더 집중하려면 필연적으로 한국군에 ①대북 억제·대응 역할 확대와 ②미·중 충돌 시 군사적 기여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미군이 중국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반도 방어는 한국이 더 많이 책임지고, 역내 유사시 미군을 지원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군의 역할·책임 재조정이 어떻게 협의되느냐다. 군 소식통은 “주한 미군이 한반도 밖으로 작전 범위를 넓히는 것을 용인하고 직·간접적 지원을 하라는 방식이 될 수도 있고, 동중국해·남중국해를 하나의 전구로 묶어 미국·일본·호주·필리핀 4국이 연합 작전을 하는 것처럼 한국도 집단 방위에 참여하라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군이 한반도 방어에 더 많은 역할과 책임을 지려면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논의가 부상될 가능성도 있다.

위 실장은 지난 9일 기자 간담회에서 ‘주한 미군 규모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질문을 받고 “국방비를 포함해 논의 대상 중 하나”라며 “동맹 관련 협의는 실무선 국장급에서 진행”한다고 했다. 국방비, 주한 미군, 전작권 등이 ‘동맹 협의’로 이뤄진다는 취지였다. 10일 정부 고위 당국자는 주한 미군 재조정에 대해 “실무 협의를 하고 있다”며 전작권 전환에 대해서도 “협의가 있다”고 본지에 밝혔다.

케빈 김 국무부 부차관보가 이끄는 미국 국무·국방부 협의팀이 이 시점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10~11일 서울에서 홍지표 외교부 북미국장 등 외교·국방부 당국자들과 ‘동맹 협의’를 했다. 외교 소식통은 “동맹 협의에서 국방비 증액, 미군과 한국군의 역할과 책임 재조정 등이 논의됐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협의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안규백 신임 국방장관은 이날 취임사에서 “한미 동맹이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서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협력을 지속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은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각종 현안에 함께 대응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