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한 지 반년이 다 되도록 신임 주한 미 대사를 지명하지 않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16일 본지에 “미국에서 신임 주한 대사에 대한 아그레망(주재국 임명 동의) 요청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주한 대사 후보자를 내정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초에는 한국계 미국인인 미셸 박 스틸 전 미 연방하원의원이 차기 주한 대사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현재는 외교 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유력한 후보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당선인 신분으로 지명한 주일·주중 미 대사는 이미 상원 인사청문회 등 필요한 절차를 모두 마무리하고 지난 4월과 5월 각각 현지에 부임했다. 그런데 주한 미국 대사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6개월이 됐지만 여전히 공석(空席) 상태다. 조셉 윤 주한 대사대리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대통령 탄핵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한국과의 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지난 1월 임명했다.

주한 미 대사의 지명이 늦어지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조현동 전 주미 대사가 지난 12일 이임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아직 후임 주미 대사를 내정하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상견례도 하지 못한 가운데, 한미 양국 모두 상대국에 대사가 없는 상황이 길어지는 것은 한미 관계에 부정적인 요소다.

일러스트=김현국

◇트럼프 집권 1기 땐 1년 4개월 만에 지명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 등 과거 미 행정부는 취임 6개월 이내에 주한 대사를 지명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10년 사이 주한 대사 지명은 점점 늦어지고 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취임 1년여 후인 2022년 2월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 대사를 지명했다. 집권 1기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1년 4개월이 지난 2018년 5월에야 해리 해리스 전 대사를 지명했다.

전직 주미 대사는 “최근 들어 주한 대사 인선이 늦어지는 건 결코 긍정적인 현상은 아니다”라며 “이재명 정부가 차기 주미 대사에 적임자를 보내 한미 관계에 이상 기류가 있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체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주일·주중 대사 인선은 신속하게 했다. 트럼프는 당선 한 달 만인 지난해 12월 6일 주중 미국 대사로 데이비드 퍼듀 전 연방상원의원을 지명했고, 그달 17일 주일 미국 대사로 조지 글래스 전 포르투갈 대사를 지명했는데 대선 기간부터 미리 염두에 두고 적임자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퍼듀 주중 미 대사는 상원의원 시절인 2018년 대만을 방문해 차이잉원 당시 총통에게 대만의 민주주의를 지지하겠다고 했다. 글래스 주일 미 대사도 미국 내 펜타닐 유통에 대해 “중국 공산당이 이 위기를 의도적으로 부추기고 있다”며 대중 견제에 적극적이다.

이 때문에 한국이 대중 견제 파트너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미국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외교·안보 전략가로 꼽히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차관의 저서를 보면 한국이 미·중 사이 담벼락을 오가는 것처럼 묘사해놨다”면서 “한국이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에 적극적이지 않으면 트럼프 행정부가 주요 파트너를 일본으로만 제한할 수 있다”고 했다.

주중·주일 미 대사가 대중 강경파인 만큼, 주한 대사도 비슷한 인물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 초 대사 후보로 거론됐던 스틸 전 의원도 해외 공자학원 퇴출 운동을 벌였던 대중 강경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