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관세협상 및 방위비 관련 브리핑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8일(현지 시각) 백악관 내각회의에서 주한 미군의 주둔 비용을 언급한 것은 무역과 안보 양면에서 한국을 압박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전날 한국에 비관세 무역 장벽 해소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데 이어, 이날은 국방비 증액 문제를 꺼내든 것이다. 무역 협상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산 쌀·소고기 수입 제한 완화, 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등 비관세 부문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전직 고위 정부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는 ‘돈’이고 무역 협상과 국방비 문제에서 각각 최대한의 액수를 받아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무역과 안보를 연계하더라도 ‘동맹 관계’란 거시적 틀 안에서 협상을 하자고 미국 측을 설득하고 있다. 마코 루비오 미 국가안보보좌관 겸 국무 장관을 만나고 9일 귀국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동맹의 ‘엔드 스테이트(end state·최종 상태)’까지 시야에 놓고 협상을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겠나. 그것을 위해 빨리 정상회담을 하는 것”을 미국에 제기했고 미측의 공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관세·비관세·국방비를 별개로 협상하지 말고, ‘한미 동맹이 어떻게 되느냐’를 보면서 협의를 하자는 취지다. 그러면서 위 실장은 “우리는 통상, 투자, 구매, 안보 관련 전반의 패키지를 감안해 협의를 진전시키자고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안보 현안을 ‘카드’로 사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주한 미군 규모,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도 포괄적 협상 카드로 올려놓고 있나”란 질문에 위 실장은 “국방비를 포함해 논의 대상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주한 미군 규모나 전작권 환수 협의가) 통상 이슈보다 오래갈 수 있지만 현안인 건 사실”이라며 “동맹 관련 협의는 실무선 국장급에서 진행 중에 있는 사안”이라고 했다.

한미 관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런 민감한 문제들을 한미 간의 “논의 대상”이라고 국가안보실장이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전작권 전환에 대해 위 실장은 “지금 정부 공약 속에도 들어 있다”며 “추진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의 고위급) 안보 협의에 올라올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거기까지 돼 있지는 않다”면서도 “(한미 협상의 카드인 것은) 맞는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0대 대선 때 “최대한 신속하게 전시작전권을 환수해야 한다”며 “주권의 핵심 중에서도 핵심이 군사 주권”이라고 했다. 앞서 2014년 한미 양국은 ‘조건에 기반한 전작권 전환’에 합의했다. 한국군이 충분한 군사적 능력을 갖추고 동맹의 북핵·미사일 대응 능력, 역내 안보 환경이 모두 적합할 때 전작권 전환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에 이를 섣불리 제기하면 주한 미군의 지위 격하와 규모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전략(NDS)을 수립 중인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 차관은 과거 전작권을 한국군에 넘기고, 미군은 중국 견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미군의 해외 주둔에 부정적이라 급속도로 전작권이 이양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대북 억지력이 약화하고, 유사시 미군의 증원 전력 파견을 보장받기 어렵다.

이 문제가 트럼프 대통령의 ’100억달러(약 13조7000억원) 요구’와 연계될 가능성도 있다. 100억 달러는 올해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인 1조4028억원(약 10억 1600만달러)보다 9배 이상 많다. 위 실장은 “(루비오 장관과의 협의에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논의되지 않았다”며 “국방비 전체는 국제적 흐름에 따라 늘려나가는 식으로 협의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동맹국들에 국방비를 GDP(국내총생산)의 5% 수준까지 올릴 것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올해 한국 국방비는 61조2000억원으로, GDP 대비 2.3%다. 트럼프가 요구한 100억달러를 더하면 GDP 대비 3%에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