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행정부와 입법·사법부, 그리고 군이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는 동안 나라 밖에서는 전쟁이 쉴 새 없이 터졌습니다. 그냥 전쟁이 터져도 놀랄 일이지만, 더 놀랄 일은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핵 대신 AI가 사용됐고, 지상군으로 전선을 밀고 들어가기보다는 드론 잠입으로 적의 종심을 파고들어 전선의 개념을 무너뜨렸습니다. 과거에 머문 대비 태세와 작전 계획으로는 미래 전, 아니 현대전도 치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의 대러시아 ‘거미줄’ 작전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일어서는 사자’ 작전은 특히 한반도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1일 러시아 공군 기지를 공격해 장거리 폭격기 120여 대 가운데 20~30%를 파괴했습니다. 최소 24대에서 최대 36대가 불능 상태가 됐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스텔스 전투기를 보내거나 탄도미사일 또는 순항미사일을 쏴서 타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름 약 50㎝ 안팎의 소형 드론을 동원해 한 대 수천억 원짜리 폭격기들을 무용지물로 만든 것입니다. 드론의 값은 2000달러(약 270만원)로 알려졌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이 작전을 위해 1년여 전부터 요원들, 그리고 러시아 현지 협조자들을 통해 ‘오사(우크라이나어로 말벌이란 뜻)’란 드론을 러시아 주요 공군기지 인근에 배치했습니다. 완제품을 반입할 경우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품별로 반입해 약속된 장소에 모아 조립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드론은 크기가 작고, 러시아에서도 민수용 드론이 많기 때문에 반입 시 검문에 걸릴 가능성이 적습니다.
그러다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때가 됐다고 판단됐을 때 잠입해놓은 ‘오사’ 수십 대를 일제히 가동시켜 기습적으로 러시아 공군기지들에 날려보내 무방비 상태의 폭격기들에 ‘자폭 공격’했던 것입니다.
이로부터 불과 12일 뒤인 지난 13일엔 이란에서 이와 비슷한 ‘드론 폭격’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란 핵 과학자, 군 사령관 등 국가 요인들, 그리고 핵 시설 방공망을 향해 정체불명의 드론들이 달려들어 자폭 공격을 했던 것입니다. 이란 핵 과학자와 군 장성들은 제거됐고, 핵 시설을 지키는 방공망도 파괴됐습니다.
그 직후 이스라엘 첨단 전투기들이 날아들어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했습니다. 이란의 방공망은 사전 드론 공격으로 불능 상태가 돼 작동하지 않았고, 하늘은 무방비 상태가 됐던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이라크와 시리아의 핵 시설을 ‘예방 전쟁’ 전략으로 선제 폭격 제거했는데 당시에는 이라크와 시리아의 방공망에 전투기가 요격될까 노심초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사드 요원들과 이란 협조자들을 통해 수개월 전에 몰래 특파해 놓은 ‘드론 부대’를 통해 방공망과 군 지휘관을 제거한 것입니다. ‘드론의 시대’이기에 가능한 작전이었습니다.
드론의 위협은 이미 한국에 닥쳐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첫해인 2022년 크리스마스 휴일 바로 다음 날이던 12월 26일 북한은 무인기 5대를 우리 영공(領空)에 침투시켰습니다. 그중 1대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상공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P-73)까지 넘어와 정찰 임무를 마치고 북한으로 무사 귀환했습니다.
우리 영공은, 방공망은 북한 무인기에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침투 시간대가 점심 시간 전후로 대낮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이미 수년 전 북한 무인기가 영공을 넘어왔다가 야산에 떨어진 채 발견된 적이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와 군 나름대로 자주 대공포 비호 등을 서울 수도권에 배치했는데도 뚫렸습니다.
무인기(드론) 공개 침투도 가능한 한국에서 만약 거미줄 작전이나 일어서는 사자 작전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군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게 숙명입니다. 러시아도 세계 최강 핵무기 보유국 중 하나인 자국을 상대로 우크라이나가 거미줄 작전 같은 도발을 벌일 줄 미처 몰랐기 때문에 당했습니다.
캐나다 및 미국 국적 기자들도 조금만 의심스러우면 객관적 증거도 없이 스파이 혐의를 씌워 에빈 호텔이라 불리는 정치범 수용소에 수년간 감금하는 나라가 이란입니다. 이란은 핵 시설과 같은 1급보안 지역 인근에 이스라엘 모사드 첩자들이 드론을 밀반입해 수개월간 ‘무사히(?)’ 지내다가 자폭 드론을 띄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국에선 최근 이상하리만큼 중국인들의 드론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습니다. 서울 내곡동 국정원, 미 항공모함이 들어오는 부산 해군 작전기지, 오산 공군기지 등…
전부 한미 주요 전략 자산, 그리고 패트리엇, F-15, F-16 등 방공망과 전투기들이 배치된 곳입니다. 국정원에는 첩보 위성 시설도 있습니다.
중국인들의 드론 촬영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일각에서는 거기는 한국 사진 기자 및 작가들도 종종 찍는데인데 뭘 그래, 그렇게 찍는다고 특별한 기밀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국가 보안 시설에 드론이 일정 거리까지 접근 가능하다는 것은 드론이 언제든 무기로 변할 수 있는 오늘날에는 단순히 ‘사진 촬영’을 통한 정보 습득의 수준을 넘어섭니다.
용산 대통령실, 청와대, 정부종합청사, 수도방위사령부 등 주요 시설 인근 주택에 적의 드론이 마치 고정 간첩처럼 평시에는 문제없이 있다가 유사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낮에 영공을 공개 침투한 북한 무인기(드론)도 막지 못했는데, 적이 밀반입한 자폭 드론은 우리가 적발하거나 막아낼 수 있을까요? 성주의 사드는 인근에서 갑자기 자폭 드론 수십대가 날아오면 이를 막아낼 수 있을까요?
이란의 방공망이 이스라엘의 드론에 당했듯이 이스라엘 또한 이란의 드론에 당했습니다. 이번 12일간의 전쟁에서 이란은 드론으로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애로우 등 방공망에 혼란을 주거나 요격 미사일을 소진시킨 다음, 탄도미사일을 배구에서 시간차 공격을 하듯이 한 박자 늦게 날려보내 이스라엘 방공망을 뚫고 텔아비브 도심을 타격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용산구 주한 미군, 대통령실 인근 주요 지역의 필지 11개 등 총 4162㎡(약 1256평) 부지를 매입한 것에 대해서도 국가 안보 차원의 검토가 필요합니다.
SK텔레콤 해킹 등 사이버 공격도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의 협력사는 2020년 9월과 지난 6월 두 차례에 걸쳐 약 72만개의 자료를 해킹당했습니다.
지난 2021년에는 당시 해군의 각종 함정과 잠수함을 설계 및 건조하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해킹당하기도 했습니다.
원전과 함정 및 잠수함 해킹은 북한 해커의 소행으로 조사됐습니다. 북한이 한국의 원전 기술과 잠수함 기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졌습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는 민주주의 국가들의 선거에도 사이버 전을 통해 영향력을 미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수개월 또는 수년간 고첩같이 태연하게 묻혀 있다 돌변할지 모를 드론의 공격, 키보드만으로 수십 년의 핵심 기술을 빼내거나 통신 등 국가 기간 시설에 혼선을 줄 수 있는 사이버 공격. 전쟁의 개념과 전개 양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군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 건지, 변할 계획인건지 물음표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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