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지난해 11월 이후 북한에 드론 요격용 방공 무기인 판치르(Pantsir)를 제공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북한의 대미(對美)·대남(對南) 타격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의 정확도·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궤도 데이터와 유도 기술 등도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유엔 대북 제재 감시 조직인 다국적제재모니터링팀(MSMT)은 이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 지원을 해준 북한에 대가성으로 각종 무기와 군사 기술을 이전했다”면서 “이는 모두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위반”이라고 밝혔다. MSMT는 지난해 4월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해체된 유엔 대북 제재 전문가 패널의 활동을 계승하고자 지난해 10월 신설됐다. MSMT는 한·미·일, 호주·캐나다·프랑스·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뉴질랜드·영국 등 11국으로 구성됐으며, 지난 7개월간 각국 정보 자산 등을 총동원해 대북 제재 위반 사항을 조사해 이날 첫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해 11월에서 올 초 사이 이동식 단거리 판치르 전투차량 최소 1대를 북한에 넘겼다. ‘판치르’는 러시아어로 ‘갑옷’이란 뜻으로, 지대공미사일·대공포 무기다. 40여㎞ 상공의 순항미사일이나 드론을 탐지해 사거리 20㎞에서 요격 가능하다. 최신 판치르는 사거리가 40㎞가 넘는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과 실전 전투 경험을 쌓은 데 이어 러시아에서 드론 방공 무기도 손에 넣은 것이다.
러시아는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 장비와 사용법 등 전자전 무기와 기술도 북한에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은 서해 5도, 강원도 등 휴전선 인근에서 부정기적으로 전자전 훈련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대남 전파 교란으로 최근 한국 통신 기지국·항공기·선박(어선·여객선·군함)의 장애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번 러시아의 신식 장비 제공으로 북한의 대남 전자전 도발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MSMT는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관련 각종 데이터와 유도 기술도 북한에 이전됐다”고 했다. 북한이 이를 바탕으로 부족했던 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보완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 노동자는 지난 한 해 8000명, 올해 상반기에는 수천 명이 러시아에 파견돼 건설·공업·IT·의료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보고서에는 북한의 파병뿐 아니라 대러 무기 제공 현황도 상세히 담겼다. 북한은 2023년 9월부터 수개월간 컨테이너 2만개 이상 분량의 D-20·D-30 견인곡사포, M-30·M-46 곡사포, 82·122·130·152·170mm 포탄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한 해에는 200대 이상의 중포, 그리고 900만발의 포탄·방사포탄을 49차례에 걸쳐 러시아 화물선으로 넘겼다. 러시아는 이를 극동 항구에서 받은 다음엔 철도를 통해 러시아 중서부 탄약고까지 운반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유엔 전문가 패널이 해체됐더라도 국제사회의 감시망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했다.
☞다국적제재모니터링팀(MSMT)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이행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신생 조직이다. 2024년 3월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해제된 안보리 대북 제재 전문가 패널의 활동을 계승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설립됐다. 회원국은 한·미·일,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뉴질랜드, 영국 등 총 11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