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파병됐다가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 백모(왼쪽)씨와 리모씨가 최근 우크라이나의 한 포로수용소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정철환 특파원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파병됐다가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가 “한국으로 꼭 가고 싶다”며 귀순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고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이 4일 전했다. 유 의원은 지난달 23~26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약 1시간 10분간 북한군 포로 리모(26)씨와 백모(21)씨를 면담하고 돌아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유 의원은 리·백씨와 나눈 대화를 담은 육성 녹음 파일과 면담 사진을 공개했다. 녹음 파일에 따르면, 리씨는 “우리 부모님과 만나기 위해 꼭 가고 싶어요. 한국에 가게 되면 내가 바라는 권리대로 그렇게 할(살) 수 있을까요?”라며 “필요한 집이라든지 가족도 이루며 (한국에서 살 수 있나)”라고 말했다. 백씨는 “결심이 생기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라고 했다가, 유 의원이 “남한 쪽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요?”라고 물으니 “좀 더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리·백씨는 지난달 19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행과 관련, “80%는 결심했다”(리씨) “고향으로 가지 못할 경우 그것도 생각하겠다”(백씨)고 했다.

◇북한군 포로 북송땐 처형 가능성… “정부 빠르게 움직여야”

유 의원은 이날 회견에서 “이들이 북으로 강제 송환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외교 당국에서 총력을 다해달라”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정부는 북한 포로들의 한국 송환과 관련, 이들의 한국행 이동 경로, 법적 지위 등 구체적 방안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본지에 “귀순 여부를 놓고 우크라이나 측과 막판 협의 중”이라면서 “귀순시키는 쪽으로 결정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구체적 이행 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하는 단계”라고 했다.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은 “자칫 국내 정치 상황 등과 엮여서 절차가 너무 지연되면 이들이 북송돼 처형될 가능성도 있다”며 “정세 변화로 기회의 문이 닫히기 전에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군은 헌법상 우리 국민이고, 이들이 한국행을 요청하면 전원 수용하겠다는 기본 원칙은 변함이 없다”면서 “협의를 계속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사항은 공개할 수 없는 상황임을 양해해 달라”고 했다. 상세한 협의 상황이 외부로 노출될 경우 북한 등이 이들의 한국행을 방해하는 공작 활동 등에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달 19일 북한 포로가 본지 인터뷰에서 북송을 우려하고 귀순 의사를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밝힌 이후 외교, 여러 채널을 통해 우크라이나 측과 이들의 송환 문제를 본격적으로 협의해 왔다.

우크라이나 측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는 지난달 현지를 방문한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에게 “포로들이 북송될 경우 처형될 수 있어 두려워하는 처지를 잘 안다”면서 “이들이 한국행을 진정 원한다면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유 의원은 “우리 당국에서 비공식적으로 (포로 송환과 관련해) 우크라이나 당국과 교감을 가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총국 대변인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국의 국가정보원, 특수부대와 탄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포로의 한국 송환이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도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 북한 군인들의 생명과 자유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면 우크라이나는 이 문제에 대해 국제 파트너, 특히 한국과의 대화에 열려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이 공개한 포로 면담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리씨는 “한국에 가면 내가 수술을 다시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이 포로는 턱에 총상을 입어 발음이 정확하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다친 상태다. 그는 “내가 포로니까 (한국에서) 가정을 이루기에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라고 묻기도 했다.

또 다른 포로 백씨와 관련해 유 의원은 “절반 정도 마음이 기운 것 같다”며 “북한에 갈까 말까를 고민하는 부분에서는 가족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백씨는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에 포로로 붙잡힐 경우 자폭을 선택하느냐는 물음에는 “목격도 많이 했고, 나 역시 부상을 당해서 쓰러질 당시 자폭용 수류탄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군에서) 그렇게 하라고 교육한 건 없고, 자기 생각에 싸우다 적에게 잡히면 그 자체가 조국에 대한 배반이니까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 의원은 “귀순 의사를 표명한 북한군에 대한 우리의 송환 의지가 ‘패싱’되지 않도록 정부에서는 더 신속하고 각별한 조치를 취해달라”며 “민주당에서도 더 이상 북한군 포로 송환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정부는 포로 후송 시 북한이나 러시아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관련 대응책 마련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진행 중인 미국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협상 결과도 귀순 절차에 변수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