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이 오는 15일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한국군사과학학회(KIMST) 학술대회에서 특별 강연을 할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지난 3월 말 외교·안보 사령탑 자리를 조태용 실장에게 넘겨주고 떠난 지 두 달여 만의 첫 공개 활동이다. 외교가에선 “김 전 실장이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 외교안보 특보로서 활동 재개에 나선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오스만 제국이 비잔틴 제국을 함락하는데 사용한 바실리카 포를 묘사한 그림. 현 튀르키예(터키)의 최대 도시 이스탄불은 15세기까지만 해도 비잔틴(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었다. 이 고도(古都)는 3중의 철옹성 테오도시우스 성벽 덕에 수십 차례의 외세 침입을 막아내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이 난공불락의 요새가 15세기 53일 만에 함락됐다. 오스만 제국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장거리 거포 ‘바실리카’로 공성전에 성공했던 것이다. 포 길이만 8m에 이르러 당시 어떤 포보다 포신이 길었고 그 덕에 270kg 돌을 1.6km까지 날려 보낼 수 있었다. 이 바실리카는 오르반(또는 우르반)이라는 과학자가 개발한 것이었는데, 그는 당초 이 무기 기술을 비잔틴 측에 제공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비잔틴은 제작비가 너무 비싸다, 우리에겐 든든한 성벽이 있다며 그의 제안을 귀히 여기지 않고 거절했고, 이에 오르반은 비잔틴을 꺾고 싶어하는 오스만 측을 찾아갔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은 그의 프로젝트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바실리카 대포를 70문 가까이 대량 생산해 전쟁에 나설 수 있었다. 첨단 무기 개발에 뜻을 갖고 행동에 옮긴 나라가 전쟁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히스토리앤서스

김 전 실장은 KIMST 학회에서 ‘국제연대에 기초한 자강(自强)의 길’이란 제목으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국방 개혁 방향에 대해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학회 주최 측인 국방과학연구소(ADD) 관계자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김 전 실장이 유·무인 복합 무기 등 첨단 군사 체계를 건설해 자강을 꾀하는 동시에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할 세력과 연대해 북핵, 중국 팽창주의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자는 내용의 강연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오스만 제국이 ‘바실리카’라는 장거리 대포로 비잔틴 제국을 무너뜨린 사례, 임진왜란 때 거북선뿐 아니라 화포장 이장손이 개발한 비밀 병기 ‘비격진천뢰’가 있었기에 왜구를 무찌를 수 있었던 사례 등을 언급하며 첨단 군사 체계 구축 필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비격진천뢰 이미지. 비격진천뢰는 무쇠로 만든 탄환 속에 화약과 쇳조각(빙철·憑鐵)을 넣고 폭발 시간 조절 장치를 장착한 조선 시대의 최첨단 무기였다. 비격진천뢰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물론 명나라도 거의 몰랐던 조선의 독창적 무기였다. 당시 ‘귀신폭탄’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대한민국 중앙박물관

김 전 실장은 대통령실을 나온 이후에도 윤 대통령의 자문그룹 인사로 물밑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김 전 실장이 원래 근무지인 고려대에 종종 나가는 걸로 안다”면서 “학계뿐 아니라 현 정부 외교안보 주요 인사들의 방문도 받고 있다. 여전히 입김이 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등 워싱턴 외교·안보 인사들이 방한했을 때도 비공식 미팅을 하며 한미 핵협의그룹(NCG) 등 정부 대외 정책 관련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김 전 실장은 윤 대통령과도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윤 대통령과 대광초 동창으로, 윤 대통령 대선 준비 당시 외교안보 가정교사 역할을 했다. 대선 캠페인 때는 외교안보 공약 수립을 주도했다. 정부 소식통은 “김 전 실장이 이번 학회 특강을 계기로, 자주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