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주력 전투기 F-15K가 비행기지에서 이륙해 동해 독도와 남해 이어도에서 작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불과 4년 전만해도 독도에서는 30분, 이어도에서는 20분 밖에 할 수 없었다. KF-16 전투기는 이보다도 더 짧아, 작전 수행 시간이 독도 10분, 이어도 5분에 그쳤다.
하지만 2019년 ‘하늘을 나는 주유소’인 KC-330이 전력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공중급유가 가능해지면서 급유 1회만으로 1시간씩 전투기 임무 수행 시간을 늘릴 수 있게 됐다. 중국, 러시아 군용기 등이 무단 침입하는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 일대에서 효과적으로 전술 비행할 수 있게 작전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공군에서 KC-330 이전과 이후, 즉 ‘BK(Before KC-330)’, ‘AK(After KC-330)’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KC-330의 정식 명칭은 ‘시그너스(Cygnus·백조자리)’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이다.
공군은 지난 12일 오후 2시 10분쯤 서해에서 KC-330으로 F-15K와 KF-16 전투기 각각 2대, 총 4대를 공중급유하는 작전을 실시했다. 공군은 KC-330 전력화 이후 처음으로 급유 작전을 국방기자단에 공개했다. 국방기자들은 비행 중인 KC-330 기내에서 실시간으로 공중 급유 작전 상황을 확인했다.
“캐빈 크루, 20 미니츠 포 리퓨얼링(Cabin crew, 20 minutes for refueling)”
KC-330 조종사는 이날 오후 1시 50분쯤 공중급유를 시작한다는 예고 방송을 했다. 약 15분 후 창밖으로 F-15K와 KF-16 전투기가 각각 2대씩 시야에 들어왔다.
F-15K는 KC-330 왼편에서 같은 속도로 나란히 비행하다가 뒤쪽으로 빠지며 사라졌다.
KC-330 후미 아래로 F-15K가 진입해 위치를 잡자 KC-330의 공중급유통제사는 급유를 위해 기체 밖으로 뻗은 붐(boom)과 F-15K 급유구를 결합하는 임무에 들어갔다.
두 항공기가 고도 1만5000피트(4500m)에서 시속 530㎞ 이상으로 항속 비행하면서 15m 내외 거리까지 근접해 직경 10㎝에 불과한 급유구가 서로 연결되게 해야 한다. 어긋나면 붐이 부러지거나 전투기에 치명적인 파손이 발생할 수 있다.
공중급유 장면은 큰 덩치인 KC-330에서 ‘촉수’ 같은 막대 봉이 뻗어나와 전투기에 꽂히는 모습이었다. 공중급유통제사는 조종실 내 조종석 바로 뒤에 있는 콘솔에서 편광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3차원(3D) 카메라 영상을 보며 급유 과정을 통제했다. 고도의 기술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순간이다. 조종석은 한 평 남짓할 정도로 비좁았다. 조종사 2명과 공중급유통제사 등 4명이 자리잡고 있었다.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261공중급유비행대대장인 조주영 중령은 “연료를 주고받는 항공기 조종사와 공중급유통제사가 가장 긴장하는 순간”이라며 “작은 실수가 큰 사고나 급유받는 전투기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공군 관계자는 KC-330의 붐과 연료를 공급받은 항공기 급유구가 연결될 때 기체에 살짝 요동이 있을 수도 있다며 미리 취재진에게 주의를 줬다.
그러나 항공기 4대에 급유하는 약 40분간 특별한 요동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전 과정은 매끄럽게 진행됐다. 조종사와 공중급유통제사의 역량과 경험, 팀워크가 느껴졌다. 공중급유 임무는 조종사와 공중급유통제사 등 5~6명이 한 조를 이뤄 수행한다.
급유가 시작된 지 40분 후 ‘디스커넥트’(항공기 분리)를 알리는 기내 음성과 함께 급유가 끝나고 F-15K·KF-16 4대가 시야를 벗어나 임무 공역으로 향했다. KC-330이 F-15K와 KF-16의 연료탱크를 가득 채우는 데는 5~10분이 걸리는데, 이날 급유 임무는 취재와 공중 촬영을 고려해 평소보다 여유 있게 진행했다고 한다.
KC-330은 연료 24만5000파운드(약 111t)를 적재할 수 있어 한번에 F-35A 전투기 최대 15대, F-15K와 KF-16 전투기는 각각 10대와 20대까지 급유할 수 있다.
KC-330은 지난 4년간 여러 임무를 수행하며 국격을 올리는 데 기여를 한 공군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KC-330 규모의 다목적 수송기를 보유한 나라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도 2019년 이전만 해도 보유하지 않은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KC-330은 인원과 화물을 적재하지 않으면 1만4800㎞를 한번에 비행할 수 있고 인력 최대 300여 명 또는 화물 37t을 운송할 수 있다. KC-330은 지난해 8월 호주에서 열린 다국적 연합훈련 ‘2022 피치블랙’ 참가 때도 우리 KF-16 편대를 공중급유하며 호주 전개를 가능케 했다.
피치블랙에 다녀온 공중급유통제사 윤한규 상사는 “공중급유로 우리 공군의 작전 영역을 한국 공역 너머 전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공군에 따르면 KC-330은 총 4대가 도입돼 현재까지 7400여 회 공중급유 작전을 수행했다.
KC-330이 군사 작전뿐 아니라 국제 지원 활동, 백신 긴급 수송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2021년에는 코로나19 백신을 수송한 데 이어 아프가니스탄 현지 조력자를 국내로 탈출시킨 ‘미라클 작전’,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요소수 긴급 공수’에 투입됐다. 올해 2월에는 지진이 강타한 튀르키예에 긴급구조대를 급파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튀르키예 긴급 구호대 파견 임무를 수행한 KC-330 조종사 엄기수 소령은 “KC-330의 뛰어난 원거리 수송능력으로 튀르키예를 도울 수 있어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을 느낀 임무였다”며 “우리 비행이 대한민국 국격을 높인다는 자부심을 갖고 전 세계를 누비는 우리 공군에 승리를 급유하겠다”고 말했다.
서해 만리포 급유공역 상공 KC-330 시그너스=노석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