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 시그너스가 후미로 진입한 F-15K 전투기에 급유 붐을 길게 내려 공중급유를 시도하고 있다./뉴스1

공군 주력 전투기 F-15K가 비행기지에서 이륙해 동해 독도와 남해 이어도에서 작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2023년 4월 12일 공군이 서해 상공에서 KC-330으로 F-15K와 KF-16 전투기 각각 2대, 총 4대를 공중급유하는 작전을 실시했다.

불과 4년 전만해도 독도에서는 30분, 이어도에서는 20분 밖에 할 수 없었다. KF-16 전투기는 이보다도 더 짧아, 작전 수행 시간이 독도 10분, 이어도 5분에 그쳤다.

하지만 2019년 ‘하늘을 나는 주유소’인 KC-330이 전력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공중급유가 가능해지면서 급유 1회만으로 1시간씩 전투기 임무 수행 시간을 늘릴 수 있게 됐다. 중국, 러시아 군용기 등이 무단 침입하는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 일대에서 효과적으로 전술 비행할 수 있게 작전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공군에서 KC-330 이전과 이후, 즉 ‘BK(Before KC-330)’, ‘AK(After KC-330)’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KC-330의 정식 명칭은 ‘시그너스(Cygnus·백조자리)’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이다.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261공중급유비행대대 소속 공중급유통제사들이 KC-330 공중급유 임무를 수행하기 전 임무절차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공군 제공 조선일보

공군은 지난 12일 오후 2시 10분쯤 서해에서 KC-330으로 F-15K와 KF-16 전투기 각각 2대, 총 4대를 공중급유하는 작전을 실시했다. 공군은 KC-330 전력화 이후 처음으로 급유 작전을 국방기자단에 공개했다. 국방기자들은 비행 중인 KC-330 기내에서 실시간으로 공중 급유 작전 상황을 확인했다.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261공중급유비행대대 조종사가 KC-330을 조작하고 있다. /공군 제공 조선일보

“캐빈 크루, 20 미니츠 포 리퓨얼링(Cabin crew, 20 minutes for refueling)”

KC-330 조종사는 이날 오후 1시 50분쯤 공중급유를 시작한다는 예고 방송을 했다. 약 15분 후 창밖으로 F-15K와 KF-16 전투기가 각각 2대씩 시야에 들어왔다.

F-15K는 KC-330 왼편에서 같은 속도로 나란히 비행하다가 뒤쪽으로 빠지며 사라졌다.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261공중급유비행대대 소속 공중급유통제사 윤한규 상사가 공중 급유 작전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대한민국 공군

KC-330 후미 아래로 F-15K가 진입해 위치를 잡자 KC-330의 공중급유통제사는 급유를 위해 기체 밖으로 뻗은 붐(boom)과 F-15K 급유구를 결합하는 임무에 들어갔다.

두 항공기가 고도 1만5000피트(4500m)에서 시속 530㎞ 이상으로 항속 비행하면서 15m 내외 거리까지 근접해 직경 10㎝에 불과한 급유구가 서로 연결되게 해야 한다. 어긋나면 붐이 부러지거나 전투기에 치명적인 파손이 발생할 수 있다.

12일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 시그너스가 피급유기인 F-15K와 KF-16 전투기 편대와 함께 공중급유임무 수행을 위해 대형을 유지하며 비행하고 있다. /공군 제공 조선일보

공중급유 장면은 큰 덩치인 KC-330에서 ‘촉수’ 같은 막대 봉이 뻗어나와 전투기에 꽂히는 모습이었다. 공중급유통제사는 조종실 내 조종석 바로 뒤에 있는 콘솔에서 편광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3차원(3D) 카메라 영상을 보며 급유 과정을 통제했다. 고도의 기술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순간이다. 조종석은 한 평 남짓할 정도로 비좁았다. 조종사 2명과 공중급유통제사 등 4명이 자리잡고 있었다.

공중급유통제사가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 시그너스에서 KF-16 전투기에 공중급유 장치를 조종하고 있다. /공군 제공 조선일보
공중급유통제사가 공중급유 임무를 수행할 때 보는 실제 화면. 공중급유통제사들은 3D 카메라로 구현되는 입체화면을 통해 피급유기와의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공군 제공 조선일보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261공중급유비행대대장인 조주영 중령은 “연료를 주고받는 항공기 조종사와 공중급유통제사가 가장 긴장하는 순간”이라며 “작은 실수가 큰 사고나 급유받는 전투기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공군 관계자는 KC-330의 붐과 연료를 공급받은 항공기 급유구가 연결될 때 기체에 살짝 요동이 있을 수도 있다며 미리 취재진에게 주의를 줬다.

그러나 항공기 4대에 급유하는 약 40분간 특별한 요동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전 과정은 매끄럽게 진행됐다. 조종사와 공중급유통제사의 역량과 경험, 팀워크가 느껴졌다. 공중급유 임무는 조종사와 공중급유통제사 등 5~6명이 한 조를 이뤄 수행한다.

KC-330의 공증급유 막대 붐이 전투기 주유구에 연결되는 모습. /공군 제공 영상 캡처 조선일보

급유가 시작된 지 40분 후 ‘디스커넥트’(항공기 분리)를 알리는 기내 음성과 함께 급유가 끝나고 F-15K·KF-16 4대가 시야를 벗어나 임무 공역으로 향했다. KC-330이 F-15K와 KF-16의 연료탱크를 가득 채우는 데는 5~10분이 걸리는데, 이날 급유 임무는 취재와 공중 촬영을 고려해 평소보다 여유 있게 진행했다고 한다.

12일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 시그너스가 피급유기인 F-15K, KF-16 전투기 편대와 함께 공중급유임무 수행을 위해 대형을 유지하며 비행하고 있다. /공군 제공 조선일보

KC-330은 연료 24만5000파운드(약 111t)를 적재할 수 있어 한번에 F-35A 전투기 최대 15대, F-15K와 KF-16 전투기는 각각 10대와 20대까지 급유할 수 있다.

KC-330은 지난 4년간 여러 임무를 수행하며 국격을 올리는 데 기여를 한 공군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KC-330 규모의 다목적 수송기를 보유한 나라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도 2019년 이전만 해도 보유하지 않은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KC-330은 인원과 화물을 적재하지 않으면 1만4800㎞를 한번에 비행할 수 있고 인력 최대 300여 명 또는 화물 37t을 운송할 수 있다. KC-330은 지난해 8월 호주에서 열린 다국적 연합훈련 ‘2022 피치블랙’ 참가 때도 우리 KF-16 편대를 공중급유하며 호주 전개를 가능케 했다.

피치블랙에 다녀온 공중급유통제사 윤한규 상사는 “공중급유로 우리 공군의 작전 영역을 한국 공역 너머 전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지진피해 긴급지원 공군 임무요원들이 지난달 2월 7일 김해기지에서 긴급구호 요원과 의약품을 보내기 위한 공군 다목적공중급유수송기 KC-330 이륙에 앞서 신고하고 있다. /공군 제공 조선일보

공군에 따르면 KC-330은 총 4대가 도입돼 현재까지 7400여 회 공중급유 작전을 수행했다.

KC-330이 군사 작전뿐 아니라 국제 지원 활동, 백신 긴급 수송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2021년에는 코로나19 백신을 수송한 데 이어 아프가니스탄 현지 조력자를 국내로 탈출시킨 ‘미라클 작전’,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요소수 긴급 공수’에 투입됐다. 올해 2월에는 지진이 강타한 튀르키예에 긴급구조대를 급파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지난 2월 8일 공군 다목적공중급유수송기 KC-330이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로 한국 긴급구호 요원과 의약품 등 구호물품을 긴급 수송하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이륙하고 있다. /공군 제공 조선일보
튀르키예 지진 실종자 수색 등을 위한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에 편성된 육군 특수부대 장병들이 지난 2월 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공군 다목적공중급유수송기 KC-330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공군 제공 조선일보

튀르키예 긴급 구호대 파견 임무를 수행한 KC-330 조종사 엄기수 소령은 “KC-330의 뛰어난 원거리 수송능력으로 튀르키예를 도울 수 있어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을 느낀 임무였다”며 “우리 비행이 대한민국 국격을 높인다는 자부심을 갖고 전 세계를 누비는 우리 공군에 승리를 급유하겠다”고 말했다.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정비사가 공군 KC-330 시그너스가 공중급유 임무 수행을 위해 이륙하기 전 항공기 후미에 설치된 공중급유장치인 붐(BOOM)을 점검하고 있다. /공군 제공 조선일보

서해 만리포 급유공역 상공 KC-330 시그너스=노석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