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자씨.

“튀르키예 군(軍)은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6·25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됐던 김은자(77)씨는 지난 1일 경기 용인시청 광장에서 열린 정전 70주년 기념 ‘자전거 동맹 로드’ 행사에서 “그날을 잊을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이날 병상에서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튀르키예 군이 저를 구해주고 ‘아일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면서 “튀르키예 군인 술레이만 딜빌리이 하사를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2월 튀르키예 지진 소식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제가 받은 사랑을 튀르키예 국민에게 조금이나마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날 행사에 직접 참석하려고 했지만 건강 문제로 입원해 대신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지진 피해 성금도 보냈다고 한다.

튀르키예 보병 여단 소속이었던 술레이만 하사는 1950년 11월 말 평안남도 군우리(里)에서 북한군 폭격에 부모를 잃고 우는 네 살배기 아이를 발견해 부대로 데려왔다. 당시 온도는 영하 30도, 아이는 부모와 자기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아이의 동그란 얼굴을 보고 터키어로 ‘달’이란 뜻인 ‘아일라’로 이름을 지어줬다. 아일라는 술레이만을 ‘바바(아빠의 튀르키예어)’라고 불렀다. 김씨는 “제가 터키어를 배워 한국 사람과 터키 군인들 사이에서 어설프게나마 통역도 했었다”고 했다.

6·25 전쟁 당시 튀르키예군 술레이만 딜빌리이 하사가 자신이 구한 한국 고아 소녀 ‘아일라’와 함께 찍은 사진. /국가보훈처

술레이만은 당시 20대 중반으로 고국에 결혼을 약속한 애인도 두고 있었지만, 아일라를 친딸처럼 생각했다고 한다. 이에 전쟁 중 귀국 명령이 떨어지자 아일라를 몰래 상자에 넣어 터키로 데려가 딸로 키우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실패했고, 둘은 어쩔 수 없이 이별해야 했다. 그는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아일라는 정말 내 딸로 여겼다.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아일라는 얼마 뒤 터키군이 전쟁고아를 돌보기 위해 경기 수원에 지은 ‘앙카라 학원’에 맡겨졌다. 아일라는 김은자라는 이름을 여기서 얻었다. 둘은 지난 2010년 국내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50여 년 만에 재회했다. 터키에선 2017년 이들 사연을 담은 영화 ‘전쟁의 딸, 아일라’가 개봉해 5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았다. 술레이만은 2019년 92세로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