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이 역사적으로 처음 조명을 받은 것은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 원정에 나섰을 때다.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의 군대에 연전 연승을 거둔 알렉산더는 기원전 339년 도주하는 다리우스 왕을 쫓아 이란 동북부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지역까지 진출했다. 당시 이곳엔 중앙아시아의 여러 유목민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말을 타고 다니면서 활을 쏘고 달아나는 전형적인 게릴라 전법을 썼다. 대열을 짓고 싸우는 정규군이었던 알렉산더에겐 당황스럽고 힘든 전투가 이어졌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아프간 정복 전쟁에 대해 ‘알렉산더가 한 명의 머리를 치면 또 하나의 머리가 나오는 히드라 괴물 같았다’고 묘사했다. 그 과정에서 ‘전쟁의 신’이라 불렸던 알렉산더조차 신경질이 생길 정도로 힘든 싸움이었다고 한다. 수시로 반란이 일어나서 이를 막으려고 이 지역 왕족의 딸과 혼인을 하고, 알렉산드리아(오늘날 칸다하르와 헤라트)라는 대도시들도 건설했다. 그 아프간이 현대에 와서는 영국·러시아에 이어 미국까지 들어갔다가 희생만 남기고 철수하는 제국의 무덤이 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제2대 도시 칸다하르를 점령한 탈레반 반군 전사들이 13일(현지시간) 정부군 차량을 몰고 거리를 달리고 있다. 칸다하르는 전날 탈레반 반군에 함락됐다. 칸다하르는 1994년 탈레반이 결성된 곳으로 탈레반에게는 '정신적 고향'이나 다름없는 도시다. /연합뉴스

미국은 당초 철수하면서 아프간 정부군이 30만명 있으니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불과 열흘여만에 30만 정부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미국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숫자를 부풀리다 보니 상당수는 허수였고 실제로는 3만~5만명에 그쳤다고 한다. 그나마도 오합지졸이었다. 미국이 준 돈과 무기의 상당부분은 탈레반으로 흘러들어갔다. 서강대 박현도 교수는 “아프간 정부군이 훈련하는 장면을 보았는데 우리나라 예비군보다도 훨씬 못한 엉터리 군대였다”면서 “나이가 많아 PT 체조도 못했고 문맹 때문에 제대로 지시 전달도 안됐다”고 했다. 처음부터 테러리스트이자 게릴라 군으로 단련된 탈레반 무장집단과는 게임이 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은 열네개 부족으로 나뉘어 있고 언어도 20개에 달한다. 5000~7000m급 산맥이 널리 퍼져있고 해발 2000m 이상 고산 지역이 전 국토의 절반이다. 경작지는 10%에 불과하다. 국민 대부분이 목축을 하면서 산다. 박 교수는 “여기 저기 흩어져 사는 여러 부족이 하나의 나라,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려는 의지도 거의 없다”고 했다.

전체의 42% 가량을 차지하는 파슈툰족이 그나마 자기들 나라를 세우려는 민족주의적 경향이 남아있다. 탈레반이 바로 그 파슈툰족 출신들이다. 파슈툰족과 이슬람 근본주의가 만나면서 탈레반 과격주의가 형성됐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소련 침공군을 견제하기 위해 막후 지원하던 전사들이 탈레반의 주류를 이뤘다. 미국이 스스로 키운 이슬람 전사들과 20년 전쟁을 벌여온 것이다.

아프간을 재점령한 탈레반은 당초 유화 정책을 펴겠다는 약속을 깨고 미국에 협력한 사람과 정부 인사, 정부군들을 색출해 처형하고 있다. 또 여성들에게 부르카와 히잡을 쓸 것을 강요하면서 이를 어긴 여성을 총으로 쏴 죽였다. 곳곳에서 여성 인권 탄압 소식이 들린다. 박현도 교수는 “20년이 지났지만 탈레반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예전처럼 여성들에 대한 반인권 정책, 국민들에 대한 폭압적 정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과 서방은 이런 탈레반 정권을 견제하기 위해 경제봉쇄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면 아프간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 답은 헤로인 마약에 있다. 중국에서 아편이라고 부르는 헤로인은 양귀비에서 추출된다. 그런데 아프간은 전세계 양귀비 생산의 87%를 차지하고 있다. 먹고 살게 없으니 양귀비를 재배해서 수출하는 것이다. 이슬람에선 원래 술과 마약 등 사람을 취하게 하는 물질은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탈레반은 자기들이 직접 헤로인을 먹지 않고 비이슬람권에 수출하니까 율법을 어긴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돈줄이 필요한 탈레반이 불법적인 양귀비 재배와 헤로인 거래를 계속할 것이란 얘기다. 결국 탈레반 휘하의 아프간은 또 다시 반인권과 폭정, 빈곤과 마약이 판치는 나라가 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