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조만간 있을 추계 재외공관장 인사에서 주요국 대사·총영사 자리를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 등 여권 인사로 채울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문 대통령의 경희대 동문들, 현 정부 외교라인 요직을 장악한 ‘연정(연세대 정외과) 라인’ 인사들이 주요국 대사로 대거 내정됐다는 것이다.
21대 총선에서 불출마하거나 낙선한 여당 정치인 일부도 유럽 지역 공관장 자리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권 초 베트남·말레이시아 대사 등 친문 특임대사들의 청탁·갑질 사건에 이어 최근 우리 외교관의 뉴질랜드 직원 성추행 사건으로 공관장의 자질 문제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는데도 ‘코드 인사’를 고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인도 대사에 내정된 김기정 연세대 정외과 교수를 비롯해 ‘연정 라인’ 인사들은 이번 인사에서도 주요 공관장과 본부 요직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연정’ 출신인 최종문 주프랑스 대사가 청와대 안보실 차장 또는 외교부 2차관으로 올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박은하 주영국 대사도 외교부 2차관 후보로 거론된다. 박 대사가 차관이 될 경우 외교부 첫 여성 차관이 된다. 외교 소식통은 “정부가 공관장 내정 후보자들에 대해 막판 검증을 하고 있다”며 “이르면 이달 말 내정자가 확정돼 각국에 아그레망(주재국 부임 동의)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차기 주교황청 대사에 백재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백만 현 대사에 이어 이번에도 직업 외교관을 배제한 것이다. 언론인 출신인 이 대사는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낼 때 홍보수석으로 호흡을 맞춘 인연으로 바티칸에 부임했다. 외교 분야와는 거의 인연이 없다. 세무사 출신인 백 전 의원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또 문 대통령의 동문인 경희대 출신의 학자·정치인·시민활동가들을 대거 특임 공관장으로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독일·캐나다· 후쿠오카 등 미주·유럽·아시아 주요국 공관에는 문 대통령의 대학 동문들이 진출한 상태다. 정범구 주독일 대사, 손종식 주후쿠오카 총영사는 각각 경희대 정치학과, 경희대 법학과 출신이다. 민주당 2선 의원 출신인 정 대사는 문 대통령 회고록 ‘운명’에서 문 대통령과 함께 시위했던 동지로 등장한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경희대 동문이자 ‘운동권 동지’인 장경룡 민주평통 국제협력분과위원장을 캐나다 대사로 임명했다. 장 대사는 경희대 정치학과 재학 당시 같은 대학 법대 학생이던 문 대통령과 함께 총학생회 임원으로 활동했다. 두 사람은 1975년 유신 독재 반대 집회를 주도하다 구속돼 같이 제적 처분을 받았다. 광주여대 교수, 맥길대 객원교수 등을 지낸 장 대사는 문 대통령이 집권하자 ‘알짜 공직’을 연달아 차지했다.
현 정부의 특임공관장 선호 현상은 ‘4강 대사’ 인사에서도 선명하다. 장하성 주중 대사가 대표적이다. 현 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내다 베이징으로 옮긴 장 대사를 두고 “문재인 정부 회전문 인사의 결정판”이란 말도 나왔다. 장 대사 전임자는 다주택 논란을 촉발한 노영민 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이수혁 주미대사도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된다. 외교관 출신이긴 하지만 2006년 퇴직해 여당 국회의원을 지내다 대사로 발탁됐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의 경우 지금은 직업 외교관 출신이 부임해 있지만, 현 정부 초대 주러 대사는 우윤근 전 민주당 의원이었다.
과거 정부들도 특임공관장을 활용하곤 했지만 현 정부처럼 자질 논란이 있는 인사들을 무리하게 발탁할 정도로 노골적이진 않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뉴질랜드 성추행 사건이 한창 논란인 가운데 부적절한 품행 문제에 휘말렸던 김기정 교수가 주인도 대사에 내정됐단 소식에 뉴델리 현지에선 다소 불쾌해하는 기류도 감지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과거 정부는 특임공관장을 발탁하더라도 최소한의 전문성을 고려했는데 이 정부는 공관장 인사를 전리품 나눠 먹듯 한다"며 "외교 인재풀도 일천하다 보니 충성심 강한 사람들만 발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