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도중 정회를 선포하고 의장석을 떠나고 있다.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를 강제로 중단시킨 것은 61년 만이다. 우 의장은 나 의원이 법안과 무관한 발언을 한다며 마이크를 수 차례 껐다./뉴스1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도중 마이크를 강제로 꺼 논란이 되고 있다. 필리버스터는 거대 여당에 대한 소수 야당의 최후 저항 수단이다. 국민의힘은 10일 “민주당 출신 우 의장이 개딸 등 여권 강성 지지층만 보고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며 “의장 이후 거취를 위한 편파 진행”이라고 반발했다. 일각에선 정치 중립 위반으로 우 의장을 고발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국회법 제20조의2에 따라 국회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은 선출된 직후 당적을 떼고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

국민의힘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우 의장은 소수당 필리버스터를 자의적으로 중단시키며 민주당과 이재명 정권의 입법 폭주를 비호하는 시녀 노릇을 자처했다”고 밝혔다. 주 부의장은 61년 전인 1964년 이효상 의장이 김대중 의원 마이크를 끊었던 사건을 언급하며 “국회의장의 ‘입틀막’은 단 두 번뿐이었다”고 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전대미문의 폭거이자 편파적 횡포”라며 “무제한 토론을 자의적·독단적으로 중단시킨 우 의장의 국회법 위반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전날 우 의장은 필리버스터를 시작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민주당의 내란전담재판부 추진 등을 겨냥해 “‘사법파괴 5대 악법’과 ‘입틀막 3대 악법’을 철회하라”고 하자 발언을 끊었다. 국회법 102조를 언급하며 의제와 관련 없는 발언을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나 의원이 민주당 비판을 이어가자 마이크를 껐다. 필리버스터를 위해 단상에 오를 때 나 의원이 인사를 하지 않자 “인사 안 하느냐”고 하기도 했다. 이날도 우 의장은 “저는 진짜 의회주의자”라고 강조했지만, 본회의장에 있던 민주당 한 의원조차 “국회의장이 마이크를 끄는 건 나도 처음 봐서 당황했다”고 했다.

우 의장은 이날 본회의에 오른 59개 비쟁점 법안이 무난하게 처리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본회의 직전 여야 원내대표 회동 자리에서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하겠다고 하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이때부터 우 의장은 국민의힘이 약속을 안 지켰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그래서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경찰이 통제 중인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담을 넘어 본청으로 향했던 곳에 우 의장의 월담 장소를 표시한 문구가 붙어 있다. /남강호 기자

하지만 민주당도 야당 시절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법안과 관련 없는 발언을 이어갔었다. 추미애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정부 시절이던 지난해 7월 ‘방송 3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에서 한 광고 음악을 개사해 “12시에 만나요, 둘이서 만납시다, 8만주. 살짝쿵 데이트. 도이치모녀스”라면서 노래를 불렀다. 방송 3법과 전혀 관련 없는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을 겨냥한 것이었다. 노래 직후 민주당 의석에선 박수가 나왔다. 추 의원은 필리버스터 발언 시간(약 2시간 30분)의 대부분을 도이치모터스 의혹을 설명하는 데 썼다. 당시 본회의 진행도 우 의장이 맡았는데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야당 관계자는 “제 식구 감싸기 아니겠냐”고 했다.

국민의힘은 우 의장 취임 직후부터 여러 차례 우 의장의 편파 진행에 반발하며 의장직 사퇴까지 요구했었다. 작년 6월엔 상임위원회 18곳 중 11곳 위원장을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강제 배정해 당시 소수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의 반발을 불렀다. 7월에는 ‘채 해병 순직 사건 특검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면서 “이 법안이 통과되기를 바라고, 대통령이 재의 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길 바란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우 의장은 국회의장이 아니라 민주당 의장”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페이스북에 “우 의장은 야당의 토론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중단시켰다”며 “왜 이처럼 무리수를 두는 것이냐. 차기 대선 출마를 노리는 것이냐”고 했다. 그러면서 “사심을 충족하고 싶으면 즉시 의장직을 사퇴하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우 의장이 작년 계엄 때 월담 후 국회에서 계엄 해제 표결을 주도한 걸 계기로 “강성 지지층을 향한 자기 정치를 한다”고 보고 있다.

여권에서도 내년 5월 의장 임기 종료 후 우 의장의 다음 스텝에 대한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개헌론자인 우 의장이 이재명 정부 국무총리로 가서 개헌을 완성시킬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했다. 또 다른 의원은 “우 의장이 내년 8월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서 연임에 나서는 정청래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회 관계자는 “우 의장이 어떤 사심이나 사욕을 가지고 국회 운영을 한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