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이 4일 ‘인사 청탁 문자’ 논란에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했고, 대통령실이 이를 즉각 수리했다. 여당 유력 의원의 인사 청탁 문자에 ‘훈식이 형(강훈식 비서실장)이랑 현지 누나(김현지 제1부속실장)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일이 알려진 지 이틀 만이다. 국민의힘은 “이 사태의 핵심인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 김현지 제1부속실장을 지키기 위한 전형적인 꼬리자르기”라고 반발했다.
이번 논란은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인 문진석 의원이 지난 2일 밤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 비서관에게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회장에 중앙대 출신의 지인을 추천하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낸 것이 언론 카메라에 잡히면서 불거졌다. 문 의원은 “아우가 추천 좀 해줘.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비서)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라고 했고, 김 비서관은 “넵 형님, 제가 훈식이 형이랑 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문 의원, 김 비서관은 모두 중앙대 출신이다.
야권에선 “만사현통(모든 일은 김현지를 통해야 한다)이 사실임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고 했다. 직무상 인사와 무관한 부속실장이 민간 협회장 인사까지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계엄 1년 직전 이같은 논란이 터지자 당황한 분위기였다. 이에 문 의원이 4일 직접 페이스북에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사과했고, 김 비서관은 사표까지 냈다. 국민의힘은 “국정을 사유화한 몸통 김현지가 그냥 있는 한, 이번 사태는 또 다른 국정 농단의 신호탄이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현지 실장은 본지 통화에서 김남국 비서관으로부터 해당 인사청탁을 “전달받지 않았다”고 했다.
◇인사 청탁 파문도 비켜간 김현지… 野 “특별감찰관 임명해야”
여권은 이번 ‘인사 청탁 문자’ 논란을 김남국 비서관의 사퇴와 문진석 의원의 사과로 일단락 지으려고 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김현지 실세설이 좀 가라앉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또다시 ‘현지 누나’를 언급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며 “특히 김 실장이 총무비서관에서 인사에 관여 않는 부속실장으로 자리까지 옮겼는데 저런 말이 나오니 대통령으로서도 큰 악재”라고 했다. 그러나 야권은 “김 실장을 사퇴시키라”며 총 공세에 나섰다.
김남국 비서관이 사퇴했지만 이번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김 비서관의 ‘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란 메시지를 통해 김 실장이 인사에 개입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 것에 대해 여권 내에서도 “진짜냐”는 뒷말이 나온다. 김 비서관은 이재명 정부 초 인사와 재정에 관여하는 총무비서관에 임명됐다가 지난 9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관례상 국회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부속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속실장은 대통령 일정 등을 담당하는 자리로 인사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논란은 여전히 김 실장이 인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키웠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부속실장은 인사와 관련이 있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또한 이번 인사 청탁 대상으로 언급된 KAMA는 민간 단체로 회장 선출권은 회원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갖고 있다. 회장 연봉은 2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이런 자리를 놓고 대통령실과 여권 유력 인사가 관여할 수 있느냐는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실 인사권과는 관련이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공기업, 공공기관장 등 인사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여권 내에서는 “이번 논란 때문에 피곤해졌다”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 한 의원은 “일부 민간 협회도 그렇고 공공기관 등의 인사는 대통령실, 정부, 여당이 상의해서 하는 게 관례”라며 “하지만 이번 일 때문에 쉽게 인사 추천을 할 수 있겠냐”고 했다.
야권에선 “현 정권의 각종 단체장 인사 개입 정황이 드러난 것”이라며 ‘특별 감찰관’ 임명을 요구하고 있다.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의 배우자와 친인척,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의 비위 행위를 감시하는 자리다. 하지만 문재인, 윤석열 정부 등 9년 내내 공석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권 초 “특별감찰관을 두겠다”고 약속한 바 있지만 이후 민주당은 특별감찰관 추천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정부의 인사 전횡 시스템이 딱 드러난 것”이라며 “이 대통령은 스스로 내뱉은 특별감찰관 임명을 왜 안 하냐”고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불편해하고 김 실장이 두려워할 만한 인물을 특별감찰관으로 지명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앙대 출신인 인사를, 중앙대 출신의 문 의원이, 중앙대 출신의 김 비서관에게, 부적절한 경로로, 중앙대 출신의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자체가 이 정권의 인사가 얼마나 카르텔화되어 진행되는지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와 민주당은 이번 논란과 ‘특별감찰관’ 임명은 별개라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특별감찰관은 여야가 후보자 3명을 선정해 대통령실에 추천해야 하는데 아직 절차 진행이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이번 사건과 관련, 윤리감찰단 조사에도 선을 그었다. 박수현 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라디오에서 “문자에서 ‘형님’ ‘누님’ 이야기가 나와 무슨 ‘사적 시스템’이 돌아가는 거 아니냐(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면서 “매우 부적절했다는 것에는 당내 이견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박 의원은 “이번 일은 범죄 행위와 연관돼 있는 그런 성격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며 “부적절했다는 건 도덕적, 정치적, 정무적으로 의미이지 범죄 혐의를 전제로 하는 윤리 감찰단의 진상 조사와 결이 다르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