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 간 갈등설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 대표 측은 “두 분 사이 호흡은 역대급으로 아주 좋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정 대표를 바라보는 당내 친명계와 대통령 지지자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대통령과 엇박자를 낸 게 대체 몇 번째냐” “집권 여당 대표가 아니라 야당 대표 같다” “개딸 등 강성 지지층만 쳐다보는 김어준식 팬덤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오는 10일 취임 100일을 앞두고 있다.

李 대선 백서 든 정청래 “내란과 전쟁 계속 수행” 더불어민주당 정청래(왼쪽에서 둘째)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5일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선거 백서 발간 시연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 백서에는 “(국민의힘의) 결정적 패배 요인은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한 것”이란 내용이 담겼고, 정 대표는 시연회에서 “내란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내란과의 전쟁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강호 기자

이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영입한 유동철 부산 수영지역위원장은 5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정청래 지도부를 향해 “독재”라고 비판했다. 유 위원장은 최근 치러진 부산시당위원장 선거에서 컷오프 되자 반발해왔다. 유 위원장은 이날도 “이유도 명분도 없는 컷오프”라며 “정 대표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결자해지하라”고 했다. 정 대표가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억울한 컷오프를 없애고 100% 완전 경선을 하겠다”고 한 약속을 어겼다는 것이다.

유 위원장의 컷오프를 두고 친명계는 부글부글하고 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유 위원장은 대통령이 성남 시절부터 함께했던 ‘찐’명 인사인데 이런 사람을 컷오프 한다는 건 무슨 뜻이겠냐”며 “벌써부터 정 대표가 이재명 지우기에 나선 것 아니냐”고 했다. 반발이 커지자 정 대표는 최근 공개적으로 “당 대표가 부족해서 그렇다”며 유감 표명을 하고 유 위원장에게 당대표 특보 자리까지 제안했다. 그러나 유 위원장은 이번 선거 면접을 주도한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소속인 문정복 의원의 당직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지도부는 “유 위원장의 면접 점수가 낮았기에 컷오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 대표는 잇따른 대통령과의 갈등설에 이어 친명계 반발까지 이어지자 매우 난감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대통령실은 여당 지도부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대통령을 정쟁에 끌어들이지 말라”며 사실상 공개 경고했다. APEC 성과를 알려야 할 시기에 여당 지도부가 대통령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재판중지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되자, 그건 대통령 뜻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래픽=이진영

정 대표는 지난 8월 2일 당대표로 선출된 뒤 대통령실과 여러 번 이견을 보였다. 검찰, 사법, 언론 개혁을 추석 전까지 밀어붙이려다 대통령실에서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 강경파가 밀어붙인 노란봉투법, 방송 3법 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대통령실은 불편한 분위기였다. 그때마다 양쪽은 “역할분담” “갈등은 없다”고 진화에 나섰었다.

하지만 검찰청 폐지 과정에서 보완수사권을 남기는 문제 등 후속 조치를 두고 갈등은 커졌다. 대통령실에선 “대통령의 뜻을 그렇게 모르냐”는 말까지 나왔고, 일각에선 명·청(이 대통령과 정 대표) 전쟁이라고도 했다. 지난 9월 초 이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 직전에는 민주당 지도부가 특검 기간을 연장하지 않는 조건으로 여야 합의를 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대통령이 UN 연설을 위해 방미를 했을 땐 민주당 지도부의 묵인하에 강경파가 초유의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를 강행해 논란이 됐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은 경제나 외교 영역에서 성과를 내며 지지세를 중도층까지 확장하려는데, 정 대표가 ‘내란 청산’을 앞세우는 당 강성 지지층 여론을 우선하느라 대통령 지지율을 깎아먹고 있다”고 했다. 이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인 개딸은 분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공행진하던 정 대표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당대표로 선출된 지난 8월 70만6000명으로 최고치를 찍고 3개월 새 6000명이 빠져나가 현재는 70만명이다.

정 대표 측은 “개혁 과제나 재판 중지법 등을 밀어붙인 이유는 대통령을 위한 것이라는 판단했기 때문이지, 정 대표가 자기 정치를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항변한다. 정 대표와 가까운 의원은 “정청래라는 사람은 세력이 아닌 혼자 몸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이라며 “주도권 싸움이라든지 나아가 차기 권력 다툼까지 계산할 정도로 약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친명계는 정 대표가 내년 당대표 연임을 위해 강성 지지층만을 바라보는 정치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정 대표는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압승하고 8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연임해 2028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고 대권으로 가는 게 꿈일 것”이라며 “그러나 지금처럼 대통령과 엇박자를 내면 그 꿈이 현실이 되긴 힘들지 않겠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