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개봉한 한국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언희 감독 작)’에선 배우 김고은(극 중 구재희)이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별 통보로 자존심이 상한 변호사 남자 친구가 김고은이 혼자 사는 집에 찾아가 ‘다시 만나자’고 제안했다가 거부를 당하자 화를 참지 못하고 손찌검을 한 것이다.
피투성이가 된 김고은은 가까스로 집을 뛰쳐나와 근처 파출소로 몸을 피한다. 영화 속 장면이지만 이 같은 교제 폭력, 스토킹 범죄 사건은 현실에서도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하루 400건꼴이다.
3일 조선일보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성평등가족위원회 위원인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경찰청 최신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112에 신고된 교제 폭력 사건은 7만8166건, 스토킹은 3만2845건으로 집계됐다.
교제 폭력과 스토킹 신고가 올해 9개월간 11만1011건, 하루 평균 406건의 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교제 폭력 신고와 사건 처리 수는 모두 증가 추세로 실인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경찰청은 “현 애인 또는 전 애인을 살해하려 한 피의자 수(기수·미수)는 2023년 71명이었지만 2024년 86명으로 약 21%포인트 증가했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신고를 하더라도 수사 기관의 사후 대응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제2의 피해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
지난 7월 울산 한 병원 주차장에서는 이별을 통보한 전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하려 한 30대 남성이 체포됐다. 현장의 CCTV와 차량 블랙박스를 보면, 이 남성은 피해자를 쫓아가 흉기로 목과 복부 등을 무참히 공격했다.
이 사건은 앞서 경찰이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가해자를 ‘구치소에 유치해야 한다’는 ‘잠정조치 4호’를 신청했지만, 검찰 단계에서 청구되지 않아 집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잠정조치 4호가 청구돼 집행돼 가해자가 구금됐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던 것이다.
스토킹처벌법상 잠정조치는 ▲1호 서면경고 ▲2호 100m 이내 접근금지 ▲3호 전기통신 접근금지(전화·문자·SNS 등) ▲4호 유치장·구치소 유치로 구분된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잠정 조치 4호를 신청했지만, 검찰 단계에서 청구되지 않거나 청구가 되더라도 법원의 기각으로 구금이 되지 않는 경우는 약 7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정조치 4호(유치)의 올해 경찰 청구 건수는 1390건이었고, 인용 건수는 434건으로 약 31.2%에 그친 것이다.
서영교 의원은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자들은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면서 “계속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전향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도 교제폭력에 대한 엄정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적 장치를 신속히 마련해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