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29일 유치원·초·중·고 교사의 정당 가입을 허용하고, 휴직 상태로 교육감 등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이른 시일 내에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외국과 비교해 교사 정치 참여가 지나치게 제한돼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미 일부 교사들의 정치 편향성 논란이 있었던 상황에서 교육 현장이 더 혼란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헌법재판소가 공립 교원이 낸 헌법소원에서 공무원의 정당 가입 금지에 대해 합헌이라고 판단해 위헌 논란도 예상된다. 교원은 공직선거 입후보 시 선거일 90일 전 사직한다는 공직선거법 조항도 합헌 결정을 받았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9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 사무실에서 열린 한국노총·민주당 고위급 정책협의회에서 “(교사들이) 페이스북에 ‘좋아요’도 못 누르는 현실, 그리고 정치 후원금을 내면 범법자가 되는 현실은 너무 낙후되고 후진적”이라며 “교사 출신인 백승아 의원이 발의한 7가지 법안을 이른 시일 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전국초등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 출신인 민주당 백승아 의원은 지난해 7월 ‘교원 정치 참여 기본권 보장 7법’을 발의했다. 교사가 정당의 당원이나 발기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다만 학생에게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할 수 없도록 했다. 공립학교 교사가 선거에 출마하려면 선거 90일 전 사직해야 하지만 개정안에는 선거 2~4개월 전 휴직하고 출마할 수 있도록 했다. 교원 노조는 그간 휴직 후 선거에 나갈 수 있는 대학교수와 형평성을 들어 개정을 요구해왔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교사가 중립성을 잃는 순간 대한민국 교육과 미래가 망한다”면서 반발했다.
◇지방선거 앞두고 교사 정치참여 길 터… 학부모 “교실마저 정치판으로 만드나”
교사의 ‘정치 활동 허용’은 이재명 정부 국정 과제로 확정된 데 이어 여권 주도로 법 개정이 추진되며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전교조 등 교사 단체들의 숙원 사업이 실현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교사노조연맹은 29일 환영 성명을 내고 “50만 교원이 절실히 원하는 과제인 만큼, 신속한 입법이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초중고 교사들은 헌법에 적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조항에 따라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다. 국가공무원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등에선 구체적인 금지 활동을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교사는 정당 가입이나 정치 자금 후원을 못 하고,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없다. 또한 선거에 입후보할 수도 없다. 그 때문에 휴직하고 선거에 출마하는 대학교수와 달리 초중고 교사는 선거일 90일 전에 학교를 그만둬야 한다. 이에 교사 단체들은 “시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정치 기본권까지 과도하게 제한받고 있다”면서 정치 활동 허용을 주장해왔다. 교사의 정치 활동 허용은 전교조와 교사노조 등 진보 단체뿐 아니라, 보수 성향 한국교총도 찬성한다.
하지만 교사의 정치 활동에 대한 우려도 상당하다. 우선 교육 현장이 정치 활동의 장으로 변할 것이란 걱정이 크다. 박은희 전국학부모단체연합 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지금도 많은 교사가 특정 정당만 좋게 묘사하는 등 정치 편향된 수업을 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학생에게 주입하는 경우가 있는데, 법으로 정치 활동을 허용하면 교실이 정치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교육부는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규정한 교육공무원법 등을 통해 ‘정치 편향 수업’을 금지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처벌 조항이 없어 적발돼도 경징계에 그칠 때가 많다. 한 사립대 교수는 “선거 연령이 내려가 이제 고3도 투표권을 갖게 됐는데, 담임 교사가 정당 활동을 하고 선거에 출마까지 하면 학생들 사이에 정치 논쟁이 격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도 최근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교사의 정치 활동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했다. 교육부 측은 “교사가 선거에 입후보하기 위해 휴직하면 교육의 연속성이 저해되고, 어린 학생들이 불안정한 교육 환경에 방치될 우려가 크다.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같은 이유로 성인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사는 정치 활동 제한 범위도 달라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교사 단체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정치 활동을 전면 금지하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라는 점을 들어 정치 활동 허용을 주장해왔지만, 우리나라 교사들은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 신분인 반면 해외에는 교사가 계약직 신분도 많아 일률적 비교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도 공무원을 직위, 신분 등으로 구분해 정치 활동 허용 범위를 다르게 정하고 있다.
교사 단체들은 교내 정치적 활동은 엄격히 금지하되, 퇴근 후 정치 활동은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보미 교사노조 위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퇴근 후 정치 활동은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교육계에선 교사가 퇴근 후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도 학생들이 얼마든지 접하고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교사의 정치적 활동 허용 범위를 정하기 쉽지 않다는 견해도 많다.
교사 단체들 사이에서도 정치 활동 허용 범위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교사노조와 전교조는 학교 밖의 정치 활동을 전면 허용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교총은 단계적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교총 관계자는 “사적 영역에서 정치적 의사 표현, 정치 후원금 기부, 사직하지 않고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권리를 우선 허용하되, 정당 가입과 선거운동 허용은 사회적 논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하자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6월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50만 유치원·초중등 교원의 표를 의식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교육계 관계자는 “진보 성향 교육 단체와 노조의 숙원 사업을 들어주면서 지지층을 강화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정당 공천을 금지한 교육감 선거에도 정치권이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