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내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와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경기지사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 안팎에선 “내란 청산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더 과격한 목소리를 통해 강성 지지층인 개딸의 지지를 얻어 공천을 받겠다는 의도 아니겠냐”는 말이 나온다.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9회 국회(정기회) 법제사법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추미애 위원장과 전현희 최고위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5.09.04 /남강호 기자

민주당에서 조 대법원장 사퇴를 맨 처음 언급한 건 6선의 추미애 의원이다. 추 의원은 지난 14일 페이스북에 “법원은 내란범 구속 취소로 내란 세력의 간을 키웠다”며 “조 대법원장은 책임지고 물러남이 마땅하다”고 했다. 이후 다른 의원들과 대통령실까지 조 대법원장 사퇴 압박에 가세하며 삼권분립 논란이 일었다. 비판이 거세지자 대통령실은 우상호 정무수석이 나서 사태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조 대법원장 사퇴를 논한 적도 논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 원내지도부도 “당론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추 의원은 16일에도 페이스북에 “재차 촉구한다. 조 대법원장은 물러나시라”고 했다. 수천 개의 ‘좋아요’와 수백 개의 응원 댓글이 달렸다. “추다르크는 항상 옳다” “추 전사를 경기지사로“ 등이다. 추 의원은 내년 경기지사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 “막말 송언석 사퇴하라” 국민의힘 “대법원장 사퇴 압박 말라”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16일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가 지난주 정청래 민주당 대표 연설 도중 ‘막말’을 했다며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위쪽 사진). 국민의힘 의원들이 의원총회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를 압박하는 여권을 규탄하는 모습. /뉴시스

경기지사 선거 출마를 고민하고 있는 김병주 최고위원도 조 대법원장 사퇴를 위한 1인 시위에 나섰고, 강득구 의원은 지난 8월 당내에서 처음으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주장한 바 있다. 강 의원은 ”사법부가 완전무결한 신성불가침의 영역은 아니다“라며 ”특판 설치는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추 의원만큼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3선의 전현희 최고위원은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전 의원 역시 조 대법원장 사퇴와 함께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주장하고 있다. 특판 설치는 민주당 지도부 중 전 의원이 가장 먼저 거론했었다. 지난 14일엔 3대 특검 특위 위원장으로서 김건희·해병대 특검을 담당할 국정농단전담재판부 신설 필요성도 제기했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는 4선의 박홍근 의원도 이에 질세라 16일 페이스북에 “지귀연 판사의 윤석열 석방, 조희대 대법원장과 전원합의체의 이재명 대표 유죄 취지 파기환송 등은 누가 봐도 적극적인 내란 동조 행위였다”며 “사법부는 사법 독립 침해를 운운하기 전에 반성과 사죄부터 하라”고 했다. 이미 박 의원은 여러 매체를 통해 민주당 주자 중엔 가장 먼저 서울시장 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10일 김병기 의원과 원내대표 선출 합동토론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해당 원대 선거에서 김 의원에게 원대 자리를 내준 서 의원은 차기 원대 후보로 재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내년 지방선거에 차출될 가능성도 있다. /뉴스1

또 다른 서울시장 출마자로 꼽히는 4선의 서영교 의원은 지난 15일 조 대법원장이 자진 사퇴를 거부할 경우 탄핵할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서 의원의 강경 발언에 개딸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서영교를 원내대표로 만들었어야 했다” “차기 원내대표는 서영교”란 글을 쏟아냈다. 3대 특검 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한 여야 합의를 주도한 김병기 원내대표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다. 서 의원은 원내대표 선거에서 김 원내대표에게 졌다.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더 강경한 목소리를 내려고 앞장서는 이유는 개딸로 불리는 열성 당원들에게 확실하게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당원 표심은 공천을 받는 데 매우 중요하다. 특히 정청래 대표는 컷오프(공천배제) 없는 당원 중심의 지방선거 공천 의지를 밝히고 있다. 현재 민주당 경선은 국민 50%, 당원 50%로 돼 있지만, 당내에선 “이 비율도 당원을 높이는 쪽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민주당 의원들이 김어준씨 등 친여 성향 유튜브에 하루가 멀다 하고 출연하려고 기를 쓰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여권 관계자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당원들에게 내세울 최대 치적은 ‘내란 청산’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저마다 앞다퉈 내란 청산의 공적을 세우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개딸이 좌지우지하는 경선을 통해 뽑히는 후보가 중도 표심이 중요한 서울, 경기에서 이길 수 있겠냐는 것이다. 또 이런 강경 목소리가 전체 판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사법부 흔들기로 개딸은 환호하겠지만, 본선에선 되레 지방선거 판세를 불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면서 “당에서 내란 청산에 속도를 내려는 것도 선거철이 오기 전에 매듭을 지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