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특검 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한 여야 합의안의 파기를 주도한 건 여권의 강성 지지자들인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 반발이었다. 개딸들이 “누구 맘대로 합의를 하냐”며 문자 폭탄 테러를 하자,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병기 원내대표는 14시간 만에 합의를 깨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개딸들을 향해 반성문을 내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당 투톱은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 소리를 들을까 봐 책임을 전가하는 듯 대놓고 싸웠다. 야권에선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동 후 여야 간 화해 무드로 접어들 것처럼 보였던 국회는 다시 개딸 천하가 됐다”는 말이 나온다.
민주당 지도부는 여야 합의안이 나온 지난 10일 밤부터 11일 아침까지 “후원금을 끊겠다” “속전속결로 내란 청산하랬더니 왜 배신하냐”는 문자를 수백 통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시간 민주당 의원 단체 텔레그램 방에서 이 문제를 비판한 의원은 166명 중 달랑 2명이었다. 한 의원은 14일 본지에 “대통령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두고 여야 합의가 나왔으니 대통령의 뜻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다른 의원은 “3대 특검들도 피로를 호소하는 마당이라 통 큰 합의를 봤다고 여겼다”며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니 문자 폭탄이 와 있었다. ‘이거 문제 되겠구나’ 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아침 민주당 지도부는 국민의힘에 합의 파기를 통보했다. 대통령실도 합의 내용을 알았지만 이 대통령은 100일 회견에서 “나는 몰랐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개딸의 영향력에 굴복했다”고 했다.
여권 내 개딸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뿐 아니라 이 대통령도 제어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게 민주당 안팎의 얘기다. 실제 개딸 뜻대로 여권의 정책 방향이 180도 바뀌기도 한다. 대선을 앞둔 지난 4월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 대통령과 우원식 국회의장은 여러 번 만난 뒤 4년 중임제 개헌에 뜻을 모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 의장이 먼저 운을 뗐다. 하지만 강성 지지층들이 “누구 맘대로 개헌을 하냐” “이 시국에 제정신이냐”고 하자 우 의장은 곧바로 이를 철회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통령도 예상치 못한 개딸 반발에 놀랐다”며 “우 의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개딸 여론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대야 강경 기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초 대통령실은 재계가 우려하는 상법과 노란봉투법 등에 속도 조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민주당 강경파는 쟁점 법안 대부분을 추진해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검찰·언론·사법 개혁도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바람대로 흘러가고 있다. 이 대통령은 “당선된 순간부터 여당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겠다”고 했지만, 국민의힘은 “대통령도, 정청래 대표도 강경 개딸들의 입김에 흔들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개딸은 이제 대통령 얘기도 듣지 않는다”며 “이미 대통령이 된 이재명이 실용을 내세워 혼란을 일으키는 걸 용납 못 한다. 이유는 딱 하나다. 다시는 정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목표, 그거 하나다”라고 했다.
개딸은 과거 정치인 지지 조직과는 다르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문재인 전 대통령의 문파 또는 문빠와 비교해 장악력이 더 세졌다. 과거엔 정치인들이 지지층에 오더를 내려 여론의 흐름을 바꾸는 등 주도권을 쥐었다면, 지금은 지지자들이 정치인 위에 군림하는 양상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강성 지지자들은 더 이상 자신을 몸통을 흔드는 꼬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특히 문 전 대통령은 ‘노무현 후계자’라는 정통성이 있었지만, 이 대통령은 그런 유산까지 없으니 그 양상이 더 심하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강성 지지자들이 과잉 대표되며 정부와 당의 의사 결정 구조까지 왜곡해 대의민주주의를 흔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개딸의, 개딸에 의한, 개딸을 위한 민주당’이 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 당원 구조는 온라인으로 가입만 해도 되는 일반 당원이 약 500만명, 1년간 당비 1000원을 한 번이라도 낸 권리당원이 250만명, 이 중 6개월간 꾸준히 당비를 내 당내 선거의 선거권을 쥔 권리당원이 120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개딸은 이 중 1만명 정도로 인터넷 등에서 활동하며 당의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정대철 헌정회장은 “강성 당원들이 싫어한다고 국민이 택한 의원 107명이 속한 제1 야당을 국정 운영의 한 축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의회 민주주의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도 “강성 팬덤에 의한 정치는 일반 대중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정치 세력이 권력을 잡으면 국민 전체의 대의(大義)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개딸
‘개혁의 딸’ 줄임말로 처음엔 이재명 대통령의 20대, 30대 여성 지지자들을 지칭했다. 주요 국면마다 강한 결집력과 행동력으로 이 대통령의 지원군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부정적 정치 팬덤의 상징처럼 불리며 이들 스스로 개딸 용어 파기 선언을 했다. 지금은 성별 구분 없이 민주당의 강성 지지자들을 통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