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정청래(뒷줄 오른쪽) 대표와 김병기(왼쪽) 원내대표가 1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다소 간극을 두고 앉아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국민의힘과 3대 특검 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강성 지지층 반발이 이어지자 이를 14시간여 만에 파기하고 이날 오후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인력 증원을 골자로 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했다./남강호 기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대통령실은 3대 특검 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한 여야 합의안에 공감했지만 강성 지지층 반발이 이어지자 하루 만에 합의를 파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강성 당원들의 반발을 이유로 합의를 깬 것은 의회 민주주의 준수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야 합의는 발표 14시간여 만에 파기됐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와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저녁 특검 수사 기간을 연장하지 않는 대신 국민의힘이 정부조직법 처리에 협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여야 원내 지도부는 환하게 웃으며 사진도 찍었다. 지난 8일 대통령이 여야 대표 회동에서 언급한 협치의 결과로 해석됐다. 민주당에선 “정청래 대표와도 다 얘기가 끝났다”고 했고, 국민의힘에선 “대통령실과 교감한 결과라고 들었다”고 했다. 김 원내대표가 정 대표뿐 아니라 대통령실과도 긴밀히 협의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합의 소식이 알려지자 이날 저녁부터 강성 지지자들은 당 게시판 등 인터넷에서 “이런 합의를 누구 맘대로 한 것이냐”며 김병기 원내대표 사퇴를 주장했다. 김어준씨가 운영하는 딴지일보 자유 게시판에서는 ‘밀실 야합이다’ ‘개혁을 원치 않는 수박(겉과 속이 다른 자)이 설친다’ ‘김병기를 끌어내리자’ 같은 글이 올라왔다. 개딸들은 “내란 정당과 협치가 웬 말이냐”며 의원들에게 문자 폭탄을 날렸다.

그래픽=양진경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최민희 의원 등 일부 의원은 저녁 늦게 의원 단체 텔레그램 방에 합의안이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고 한다. 이후 페이스북에 추미애 민주당 의원은 “굳이 이런 합의는 필요치 않다”고 썼고, 박선원 의원도 “내란 당과 3대 특검법을 합의했다니, 내란 종식은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했다. 서영교 의원도 “특검 기간 연장, 인원 증원 사수”라며 “타협은 NO(노·없다)”라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도부에선 별다른 입장이 없었다. 민주당 한 의원은 “대통령과 다 얘기가 된 합의문으로 생각됐기 때문에 눈치를 봤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11일 아침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내부적 갈등과 당원들의 반발’을 이유로 합의 파기를 통보했다. 정청래 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어제 협상안은 제가 수용할 수 없었고 지도부 뜻과 다르기 때문에 바로 재협상을 지시했다”면서 “김 원내대표도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도부 의견과 많이 달라서 저도 어제 많이 당황했다”고 말했다. 이 직후 이재명 대통령도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여야 합의안에 대해 “몰랐다”며 특검 연장과 정부조직법 처리를 맞바꾸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에 김병기 원내대표 책임론이 불거졌고 대통령 회견 라이브 방송 채팅창엔 사퇴하라는 글이 도배됐다. 강성 지지자들은 사퇴하라며 국회로 몰려오기도 했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에게 비난이 쏠리자 격노했다. 공개적으로 “정청래는 사과하라”고도 했다. 원내 지도부 관계자는 “3대 특검 모두에서 ‘수사 기간 연장 없이도 주어진 기간 수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해왔다”며 “그래서 연장하지 않기로 대통령실, 정 대표 등과 얘기가 끝난 문제였다”고 했다. 다른 의원은 “지지자들이 난리를 치니 정 대표도 무서워서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 것”이라고 했다. 이후 국회와 민주당 당사 앞에선 ‘정청래도 문제다’ ‘책임져라. 사퇴하라’는 시위도 벌어졌다.

정 대표는 이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번 협상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며 당원과 국민, 의원들에게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실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에선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다”는 말도 나온다. 여권 일각에선 당과 대통령실이 주요 쟁점 사안마다 강성 지지층 요구에 끌려다니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