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인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시민 600여 명은 “국회의원 기득권 폐지가 헌법 정신”이라고 외쳤다.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은 성명에서 “국회 회기 중 불체포 특권을 비롯해 국회의원 특권은 186가지에 달한다”며 “국회야말로 ‘기득권 카르텔’”이라고 했다. 장기표 특본 상임대표는 “국회의원들이 특권을 내려놓는 것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정신에 맞게 행동하는 길”이라고 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특권 폐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내년 총선이 여야 경쟁을 넘어 특권 폐지 같은 정치 개혁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성난 민심과 달리 지난 10년간 국회 예산은 40%, 인력은 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원 수당을 비롯해 자기 예산을 결정하는 국회가 기득권을 내려놓기는커녕 몸집만 키우는 셈이다. 국회 예산은 2013년 5218억원이었지만 올해 7306억원으로 증가했다. 늘어난 예산 2000억원 중 절반은 인건비였다. 2017년 국회의원 보좌진에 8급 비서관이 신설되면서 국회 정원(국회의원 제외)은 2013년 4041명에서 올해 4553명으로 늘었다. 여기에 의원실 한 곳마다 한 명씩 둘 수 있는 인턴을 포함하면 인원은 4800명이 넘는다. 국회는 인턴을 정원에 포함하지 않지만 인턴에게는 월 200만원이 세금으로 지급된다.
의원 외교 예산도 2013년 72억원에서 올해 167억원이 책정됐다. 국회가 만든 ‘국회의원 외교 활동에 관한 규정’에 따라 의원들이 의원 외교를 나갈 경우 비즈니스석 항공권과 숙박비·식비, 차량임차료 등이 지원된다. 국회 관계자는 “올해는 부산엑스포 유치 때문에 의원 외교 예산이 더 증액된 측면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해외 출장의 경우 “정말 필요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월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등 기재위 소속 여야 의원 5명은 스페인·프랑스·독일을 10일간 다녀오는 데 비즈니스석 항공료 5500만원을 포함해 세금 9000만원을 썼다. 기재위에서 논의 중인 ‘재정 준칙’ 제도를 시찰한다는 이유였지만 외유성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 요청이나 국제회의 이외에 ‘위원회의 해외 시찰’도 국회의장의 승인이 있으면 세금을 지원할 수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과거처럼 아내까지 데려가 해외에서 골프 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지만 의원 외교라면서 본인이 쉬기 위해 주말을 끼고 출장 일정을 잡는 관행은 여전하다”고 했다.
국회의원은 월평균 1285만원을 수당으로 받는다. 일반수당과 급식비 등이 매월 20일 통장에 입금되고, 설과 추석에는 명절휴가비로 414만원씩 받는다. 국회의원 1명에겐 9명(인턴 1명 포함)의 보좌 인력이 지원되는데 이들 인건비도 월평균 4500만원이 넘는다. 의원과 보좌진 인건비만 의원실 1곳당 7억원 가까이 드는 셈이다. 월 150만원 가까운 주유비와 차량유지비, 사무실 운영비, 정책 자료 발송료 등은 별도다.
2021년 국회는 2022년 국회의원 수당을 월평균 12만원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반면 같은 해 일본 의회는 코로나 고통 분담 차원에서 2020년 4월 시작한 수당 20%(약 월 250만원) 삭감 조치를 연말까지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뉴질랜드 의회는 2020년 7월부터 6개월간 장관직을 맡은 의원은 20%, 일반 의원은 10%씩 수당을 삭감했다. 이 조치로 20억원가량의 세수가 절약됐다고 뉴질랜드 언론이 보도했다. 인도 의회 역시 “코로나로 인한 비상 상황에 대응하겠다”며 2021년 1년간 의원 수당을 30% 삭감했다. 한국에선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 등 일부 의원들이 자진해 수당 일부를 반납, 기부했지만 해외 같은 수당 삭감은 없었다.
국회의원의 ‘무노동 유임금’ 문제도 국회 안팎에서 계속 지적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구속 중 수당 지급 문제다. 국회의원은 임기 도중 구속이 돼도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는 이상 입법활동비 등 수당이 그대로 지급된다. 3억5000만원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작년 9월 법정 구속된 국민의힘 정찬민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공무원의 경우 형사 사건으로 직위가 해제되면 월급의 50%, 3개월 후부턴 30%만 지급하고, 서울시의회 등 지방의회에선 조례를 개정해 구속된 의원에게 의정활동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본인 재판 준비 등의 이유로 휴가신청서를 내면 회의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회의 참석 특별활동비(하루 3만1000원)를 주는 관행, 여야 대립으로 상임위 구성이 안 돼 국회가 제 기능을 못 해도 수당을 지급하는 문제 등도 대표적인 무노동 유임금 사례다.
여론의 비판이 거세자 여야는 일을 안 하면 수당을 줄이는 개정안을 21대 국회에서 10건 이상 발의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건도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국회 관계자는 “언론 보도를 노리고 법안을 발의하지만 정작 계속 주장하는 의원은 찾기 어렵다”며 “자기 목에 방울을 다는 문제라 의원들의 양심에만 기대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여야 지도부와 혁신기구는 최근 국회의원 무노동 유임금 해소, 불체포 특권 포기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여의도에선 “또 한 번의 쇼”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이날 국회 앞에 모인 국회의원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은 보름 전쯤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에게 참석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회신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