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가운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북한 공작원의 지시를 받은 진보 정당과 노동계 간부가 제주·창원·진주·전주 등에 지하조직을 만든 혐의로 수사받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당 내에서 1년 후로 예정된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2일 당 회의에서 “현재 대공수사 요원들의 노하우, 경험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며 “국정원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 문제를 원점에서 논의해주길 정부에 촉구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전날 “국정원에 대공 수사권을 되찾아 주고 전문 사이버 방첩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와 권한 남용 우려를 이유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기로 하고,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국회에서 국정원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라 2024년 1월 1일부터 국정원은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하되 간첩 수사는 경찰이 맡게 된다.

전직 안보 전문가들은 “최근 간첩 사건의 경우 국정원이 북한 공작원과의 캄보디아 접촉 계획을 파악하고 5년 이상 추적했는데, 해외 조직이 없는 경찰은 하기 힘든 수사”라고 했다. 국정원이 정보를 경찰에 넘기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전직 국정원 인사는 “국정원 안에서도 대공수사는 별도 건물을 쓸 정도로 정보 출처 보호가 중요한데 사실상 공개 조직인 경찰에 넘길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했다. 염돈재 전 국정원 1차장은 “(대공 수사) 전문가 한 사람을 키우는 데 15년이 걸리고, 심문 때 북측 지도원의 이력, 성격까지 알아야 간첩의 거짓말을 파악할 수 있는데 이런 전문성을 보유한 곳은 국정원뿐”이라고 했다. 또 “핵 기술을 고도화한 북한이 앞으로 한국에 평화를 가장한 친북 세력 구축을 위해 훨씬 많은 간첩을 내려 보낼 가능성이 큰데, 대공 수사권이 경찰에 이양되면 수사에 막대한 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대공수사권을 국정원에 남기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다수당인 민주당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인 윤건영 의원은 “애초 대공수사권을 이관한 취지는 권력 남용 등 국정원의 흑역사 때문”이라며 “최근 일어난 간첩 사건을 핑계로 대공수사권 이관 백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