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5일 인사청문회를 마친 5개 부처 장관 후보자 중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박준영 해양수산부·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입장을 정했다. 특히 임·박 후보자를 낙마 1·2순위로 꼽았다. 두 사람에 대해선 정의당도 “장관직 수행에 미흡하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개적으로는 “낙마할 정도의 하자는 없다”고 했지만, 내부에선 “일부 후보자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는 “지금은 국회의 시간”이라며 말을 아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후보자 3명은 명백하게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관행이었다며 뻔뻔한 태도를 보였다. 국정을 책임질 자격이 없다”고 했다. 임 후보자는 위장 전입·가족 동반 해외 출장·논문 표절 등 의혹으로 ‘여자 조국’이란 소릴 들었고, 박 후보자는 아내의 도자기 밀수·판매 의혹이 제기됐다. 노 후보자는 공무원 특별공급 아파트 ‘갭투기’ 의혹이 불거졌다.
민주당은 일단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시한(5월 10일)까지 시간이 있는 만큼 내부적으로 더 논의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부에선 “5명 전원 임명 강행은 부담스럽다”는 말과 “1~2명이라도 낙마하면 임기 말 후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동시에 나왔다. ‘당 주도’ 당·청 관계를 내세운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이날 “상황에 대한 보고를 잘 들어보겠다”고만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단 여야 협의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송 대표가 일부 후보자의 사퇴 또는 지명 철회를 건의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동의 없는 30번째 장관급 임명을 강행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는 여야 합의로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됐고,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도 야당이 반대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與 새 지도부 첫 시험대된 ‘임·박·노’
더불어민주당 새 지도부가 5개 부처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두고 당청 및 여야 관계의 첫 시험대에 올랐다. 야당이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박준영 해양수산부·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를 민주당 단독으로 채택한다면 정권 말까지 독주(獨走)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
여권 내부적으로는 청와대 인사 검증을 거친 장관 후보자에 난색을 표시할 경우 ‘원 팀 기조’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송영길 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당이 정책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한 만큼 과거 당 지도부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당 지도부는 각 상임위원회 의원들의 의견부터 들어본 다음 이번 주 중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당론을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한병도 원내수석부대표는 5일 본지 통화에서 “각 상임위원들 의견을 내일까지 전달받기로 했다”면서 “이후 지도부가 상임위 논의 결과를 청취하고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적격, 부적격 여부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준호 원내대변인도 “당 지도부가 이번 주 내에는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보고서에 대한 의견교환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표면적으로 민주당은 과기부·해수부·국토부 장관 후보자 3인방에 대해서 “장관직을 수행하지 못할 정도의 치명적인 결격 사유는 아니지 않으냐”는 입장이다. 하지만 각 상임위 내부로 들어가보면 의견이 엇갈린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당내에서도 ‘이건 좀 실망스러운 인선이 아니냐’ ‘국민감정이 좋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했다.
특히 나랏돈 외유, 위장 전입, 아파트 다운계약, 논문 표절 의혹이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지면서 ‘여자 조국’ 별칭까지 붙은 임 후보자에 대해서는 “민심에 귀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개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 후보자가 외유성 출장에 두 딸을 대동한 것은 2030 세대 청년들의 눈에 ‘엄마 찬스’로 비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1000점이 넘는 도자기 밀반입 의혹에 “모두 영국 집에서 썼던 것”이라고 해명했던 박 후보자에 대한 당내 여론도 심상치 않다.
이 때문에 ‘당 주도권’을 강조하던 송 대표가 1~2명의 장관 후보자 거취를 결단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당대표 정견 발표에서 “국민께서 우리의 위선을 지적했는데 정말 이런 상황에서 하던 대로 하면 안 된다”고 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부터는 당이 주도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자연스럽다”고 했던 만큼 청와대도 송 대표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당이 청와대와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을 보이기 이전에 ‘낙마 1순위’로 지목된 임 후보자가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당 핵심 관계자는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지금부터 모든 정치 행위는 차기 집권 전략”이라면서 “당이 지지율 깎아먹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5명 후보자 모두를 안고 가기보다는 일부는 (정리)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다만 장관 후보자가 중도 낙마할 경우 적당한 대안이 마땅치 않은 데다, 인사 검증을 수행한 청와대에 정치적 부담을 안길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친문 성향 윤호중 원내대표, 최고위원들이 당내 일각의 장관 후보자 낙마 요구를 ‘청와대와의 차별화’로 받아들여 대립할 경우, 내분의 기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관사 재테크 의혹이 불거진 노형욱 국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당내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이 반대하지만 밀어붙여도 정치적 부담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송 대표는 이날 관악구의 아동복지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일부 장관 후보자들의 논란에 대해 “상황에 대한 보고를 잘 들어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