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사용되고 있는 백신 여권. /게티이미지 AFP 연합뉴스

미국 소개팅 앱 자기소개란엔 요즘 새로운 항목이 생겨나고 있다. ‘코로나 백신 접종’을 표시하는 칸이다. 백신 접종이 빠르게 진행 중인 미국에선 이제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백신 맞았나요?”부터 물어보게 생겼다. 채용 때 접종 확인서를 요청하는 회사도 늘어날 조짐이라 한다. 회사가 건강검진을 요구하는 게 합법적이듯, 백신 접종을 입사 조건으로 걸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변호사 소견이 외신엔 많이 보인다.

인류는 지금 두 종류로 쪼개지고 있다. 백신을 맞은 자, 그리고 나머지다. 우리 국민은 대부분이 ‘나머지’에 속한다.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만들어진 코로나 백신은 모든 나라에 평등하게 공급되지 않는다. 이를 개발한 나라가 제일 먼저 가져가고, 돈 떼일 위험 감수하면서 일찌감치 구매 계약 맺은 나라들이 그다음이다. 한국 순번은 저기 끝인 듯하다. “백신 안 주는 미국은 깡패”(23일 정세균 전 총리)라고 화를 내봤자 무슨 소용인가. 소셜네트워크엔 이런 조롱이 돈다. ‘축! 한국 접종률 드디어 르완다를 제쳤습니다!’

코로나 백신은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낸다. 올바른가를 떠나 세상이 돌아가는 형세가 그렇다. 많은 나라가 백신을 맞은 사람에게만 국경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영국 등 백신 접종이 한창인 나라에선 백신 접종자만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 관람이 가능하다. 스탠퍼드대 등 미국 주요 대학들은 새 학기 때 백신 접종자만 수강을 허락하기로 했다. 영국에선 미접종자의 식당·카페 출입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는 모양이다. CNBC는 “영국 식당엔 흡연석과 흡사한 백신 미접종자 전용 구역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코로나 백신으로 인간을 차별하는 건 ‘백신 파시즘’과 다름없다는 반대 여론도 인다. 미국 일부 정치인은 개인의 신념에 따라 백신을 안 맞는다고 이를 탄압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백신 차별이 폭력적’이라는 이런 목소리는 그러나 코로나에 지칠 대로 지친 대중에게 잘 먹히지 않는다. ‘마스크 안 쓰면 행동을 제약하지 않나. 백신 접종 안 하면 우리 사이에 끼지 말라는데 뭐가 문제인가.’ 이렇게 맞받아치면 반박할 논리가 궁하다.

뉴잉글랜드의학저널은 최근 백신 여권(접종 확인서) 도입·사용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검토한 보고서를 내면서 “백신을 안 맞는 이들이 제약을 감내하도록 하는 것은 집단 면역 형성을 위해 타당한 조치”라고 적었다. 백악관도 최근 “정부 차원의 백신 인증서는 안 만든다. 하지만 민간이 한다면 괜찮다”고 밝혀 사실상 백신 여권 사용을 허락했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백신 여권이 보편화하면 접종자·미접종자의 처우는 더 확연히 갈릴 것이다. 백신으로 집단 면역을 형성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가 경제·외교적으로 분리될 가능성도 크다. 한국은 한때 코로나 방역 위상이 최상위였다. 국민이 답답한 마스크를 얌전히 견뎠고 자영업자도 쥐꼬리만 한 지원금을 받고 버티며 달성한 성과였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카페에서도 종업원의 주의를 받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즉각 마스크를 다시 써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피곤한 정부 지침도 우리는 다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정부는 백신만 구해오면 됐는데 그 하나를 제대로 못 해서, 국민이 초라한 처지로 내몰리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