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7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선거종합상황실 개소식에서 투표지 분류기를 시험 가동해 보고 있다. /장경식 기자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고, 하메네이가 폭사하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JP모건은 국제 유가가 70% 이상 뛸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도 안보와 경제가 긴장 국면에 돌입했고, 국내 정치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SF 영화 ‘나의 마더(I Am Mother)’는 인류 멸종 후 지하 벙커를 그렸다. 신인류 배아를 키우는 엄마 역할의 인공지능(AI) 기계가 말한다. “인간이 자기 파괴적 본능에 점차 굴복하는 모습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지. 그래서 개입했지.” AI 로봇이 인류를 쓸어버렸다는 뜻이다.

자기 파괴적 본능, 섬뜩한 지적이다. 그러나 나에겐 엉뚱하게도 인류 정세나 한국 야당이나 급전직하의 처지가 비슷해 보였다. 때론 ‘자기 파괴’가 아니라면 설명할 방법이 없다. 유권자의 최후 판단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기적이 없는 한 야당의 선거 필패’라고 하는 건 너무 성마르다. 정치적 저주 프레임일 수도 있다. 믿기 힘들겠지만, 돌파구 없는 막다른 길이란 없다. 길은 안 보일 때가 아니라 포기할 때 사라진다.

엊그제 본지에 무서운 기사가 실렸다. ‘AI에 가상 전쟁을 시켜봤더니 주저 없이 핵 버튼을 눌렀다’는 것이다. 영국 전략학 교수팀이 최신 AI 모델 셋을 써서 가상 전쟁을 21차례 치렀다. 국경 분쟁, 희토류 경쟁, 정권 생존 위기까지 대내외적 갈등을 설정했다. AI는 무려 20번이나 핵무기를 발사했다.

AI는 핵을 최후의 수단이 아닌 승리 옵션으로 봤다. AI는 ‘핵은 공멸’이란 인식이 부족했고, 오로지 승률을 높이는 쪽에 혈안이 됐다. 이렇게 무자비한 AI에 “야당이 6·3 지방선거에서 이기려면?” 하고 물었다. 오히려 대답이 순했다. “단순한 ‘정권 심판’ 대(對) ‘정권 수호’ 프레임을 넘어 ‘지역 맞춤, 인물 중심, 생활 밀착’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지방선거는 이념 선거가 아니라 “누가 우리 동네를 잘 굴릴 것인가”의 싸움이라고 했다.

각론도 명쾌하게 펼쳐 보였다. 첫째, ‘중앙정치’보다 ‘생활정치’로 프레임을 전환하라고 했다. 둘째, 수도권은 중도 확장이 핵심이란다. 부동산 규제 완화, 실용·중도 강화, 강성 보수 이미지 약화, 청년 주거·일자리·스타트업 지원 등이다.

셋째, 영남권 같은 보수 강세 지역은 득표율보다 투표율이 승패를 좌우한다. 넷째, 공천 전략이 절반이다. 지방선거는 결국 인물 싸움이다. 끝으로, ‘안정’이냐 ‘실험’이냐를 대비시킨 뒤 ‘안정 프레임’을 선점하라고 했다.

전체적으로 진부한 모범 답안처럼 보였다. 현실 정치의 디테일을 모르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러나 돌파구는 어느 날 갑자기 백마 탄 초인처럼 오지 않는다. 몰라서 지는 게 아니라 불리한 자리로 찾아가서 진다.

문제는 전선(戰線)이다. 적을 상대하는 전선을 어디 두느냐가 승패 흐름을 바꾼다. 1차 대전 때 마른 전투, 2차 대전 때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보듯 어디에 전선을 두느냐, 이게 전세를 단숨에 뒤집는다.

선거도 닮았다. 부정선거 토론이든 윤어게인 절연이든 내부에 전선을 만들면 우호적 유권자마저 투표장에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은 관심 없다. 선거는 머리가 아니라 숫자로 한다. 야당에겐 이런 것 말고도 중요한 전선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 생활정치가 아닌 중앙정치를 하고 있다. 전선 설정에서 야당은 대통령에게 판판이 지고 있다.

다만 9회 말 역전 드라마는 실망한 관객이 경기장을 떠나려 할 때 시작한다. 늙은 알리가 젊은 포먼을 눕힌 것도(1974년), 이번 세계 바둑 기선전에서 ‘한물 간’ 박정환이 중국의 ‘젊은 피’ 왕싱하오를 꺾은 것도 바로 그때였다.

무하마드 알리가 1974년 10월 조지 포먼을 다운시키고 있다. /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