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북한은 굳이 남침할 필요도 없고 그냥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한국의 저출산을 경고한 1월 초, 페이스북에서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득남했습니다.” 신생아 영상과 함께 올라온 출생 신고였다. 50년 전에 비해 4분의 1로 줄었다는 통계를 빌리지 않아도 탄생은 귀하고 축복받을 일이다. 그런데 저 소식은 파란만장한 아버지 때문에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는 1982년 함경북도 회령의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6·25 때 잡힌 국군포로 중 전향한 사람들, 북한 출신이지만 전쟁 때 남한에 우호적인 행위를 하거나 다른 이유로 추방된 사람들, 그들을 관리·통제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한반도의 온갖 사투리를 다 들으며 자란 소년의 장래 희망은 군인이었다. 남조선 괴뢰와 미 제국주의자들의 착취로 고통받는 남한 인민들을 구하고 싶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닥쳤다. 배급이 줄고 지연되더니 끊겼다. 식량과 바꿀 수 있다면 뭐든 장마당에 내다 팔았다. 수령의 은혜고 뭐고 닭 한 마리만 준다면 어느 나라로 가도 상관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사회주의 낙원에서 아침마다 누가 굶어 죽었다는 소리가 들렸다. 이웃이 죽어도 문상을 가지 않았다. 유일한 생명줄은 탄광에서 나오는 화물 열차였다. 소년은 배낭을 지고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 석탄을 훔치고 열차가 멈추기 전에 뛰어내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발을 헛디뎠다.
정신을 차려 보니 왼쪽 무릎과 발목 사이가 너덜너덜했다. 왼손도 덜렁거렸다. 열차 바퀴가 지나간 것이다. 열네 살 소년은 마취제도 진통제도 없는 병원 수술대로 옮겨졌다. 의사가 톱으로 무릎을 썰었고 소년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긴 수술 중에 몇 번을 기절했다. 그럴 때마다 의사가 소년의 뺨을 때렸다. 때리면서 물었다. 네 이름이 뭐냐? 너는 왜 살아야 하느냐?
그것은 소년을 평생 따라다닐 질문이었다. 이름은 지성호.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잃고 꽃제비(거지)로 살던 그는 2006년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 중국, 라오스, 태국을 거쳐 그해 7월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목발을 짚고 약 1만㎞를 걷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2018년 여름 서울에서 만났을 때 그는 북한 인권 단체를 이끌고 대북 라디오 방송을 하며 중국에서 곤경에 처한 탈북 여성들을 구하고 있었다.
입국하자마자 의수와 의족을 받았지만 그는 목발을 버리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2018년 미 의회 국정연설 중 소개된 지씨가 목발을 번쩍 들어 올린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투박하지만 단단한 그 목발은 생에 대한 의지, 자유를 향한 열망의 상징이다. 긴 절망 끝에 그는 아버지에게 목발을 만들어 달라고 했고 성한 팔과 다리로 뭐든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올해로 탈북 20년. 한국에서 극빈층으로 생활을 시작한 지성호씨는 지금 이북5도위원회 함경북도 지사다. 오랜만에 전화해 아버지가 된 것을 축하하면서 머스크의 경고를 들었는지 물었다. “그래서 제가 아들 낳았습니다(웃음).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며칠 있었는데, 제일 기쁜 건 아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다는 거예요. 장애 때문에 저는 마음에 빚이 있었거든요. 북한 아이들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겠습니다.”
서울에서 불과 50㎞, 멀고도 가까운 그곳의 참혹한 현실을 지성호씨의 몸이 증언한다. 아버지가 된 이 남자는 북한 주민들이 자유를 얻는 날까지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한다. 한 팔과 한 다리의 힘으로 밀고 가는 불굴의 희망. ‘너는 왜 살아야 하느냐?’는 그 삶이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