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김어준씨 유튜브 방송에 배우 조진웅씨가 출연한 모습.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유튜브 캡처

배우 조진웅의 과거를 디스패치가 폭로하고 나흘 뒤 김어준이 이 사태에 뛰어들었다. 유튜브에서 “문재인 정부 때 활동 때문에 ‘작업’당했을 수 있다”고 했다. “(소년범 기록은) 미성년자 개인정보라 합법적 루트로는 기자가 절대 얻을 수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우선 해당 매체는 첫 보도에서 “지속적인 제보를 토대로 파헤쳤다” “8·15 광복절 행사 이후 제보가 쏟아졌다”고 했다. 익명이지만 출처(source)가 여럿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은 쏙 빼고 ‘누군가 접근 불가능한 정보를 빼내 기자에게 흘렸다’는 서사를 만들고, 특정한 의도가 있다는 암시를 줬다. 음모론에서 주로 쓰는 ‘맥락 바꾸기’(Contextomy) 수법이다.

김어준의 이번 음모론은 사실 재미가 없고 믿는 사람도 별로 없다.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됐다는 점에서 놀랍지도 않고, ‘한동훈 암살조’처럼 의외성도 없었다. 추종자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고, ‘우리가 당했다’는 피해자 의식만 강화시킬 뿐이다. 다만, 김씨가 무시한 ‘제보’가 평소 그가 음모론을 펼칠 때마다 ‘애용’한 출처란 점이 쓴웃음을 짓게 한다.

김어준은 비상계엄 직후인 작년 12월 13일 국회에 참고인으로 나와 “제보받은 내용”이라면서 “한동훈 암살조가 있었다”고 했다. 이 발언 다음 날, 의결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한 차례 부결됐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다. 1년이 흐른 지금 이 무시무시한(?) 제보가 사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알려진 것이 없다. 이래도 되나. ‘내란 특검’에서 김씨를 조사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김씨는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체포·이송되는 한동훈을 사살한다, (중략) 특정 장소에 북한 군복을 매립한다, 일정 시점 후 군복을 발견하고 북한 소행으로 발표한다, 미군 몇 명을 사살해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 폭격을 유도한다”고 말했다. 지금 다시 들으니 ‘중앙선관위에서 중국인 간첩 99명을 체포했다’는 음모론 주장과 별 차이가 없게 느껴진다.

미국서 나온 연구에 따르면, 음모론엔 좌우가 따로 없다. 좌우 양극단일수록 음모론에 취약하다. 보수 우파는 기후 변화나 코로나19 음모론을 잘 믿고, 진보 좌파는 권력 엘리트나 금융계 관련 음모론을 더 믿는 경향을 보였다.

한국은 좌우의 부정선거 음모론이 비슷하다. 현재 부정선거론자들은 ‘대수(大數)의 법칙’을 거론하며 “투표자 집단은 크기 때문에 일반 투표와 사전 투표 결과가 통계적으로 비슷해야 한다. 그런데 매번 차이가 크다”면서 조작을 주장한다. 그러나 사전 투표 참가자들은 연령대나 직업, 정치적 관심도 등에서 일반 선거일 투표자들과 다를 수 있다. 두 집단이 동일하다는 전제가 애초에 잘못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김어준이 비슷한 주장을 했다. 이른바 개표 조작 의혹이다. 그는 투표지 분류기에서 정상 처리된 투표지와 접힘 등으로 분류기를 통과하지 못해 사람이 확인한 투표지의 득표율 분포가 같아야 하는데 미분류 투표지에서 특정 후보가 높게 나온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사전투표’냐 ‘미분류 투표지’냐는 차이만 있을 뿐,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집단에 대해 같은 선거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전제하고 음모론을 제기한 사고의 구조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이솝우화에선 거짓말 일삼는 양치기 소년을 마을 사람들이 혼내준다. 아침마다 김어준 유튜브에 몰려가 귀 기울이는 것을 보면, 우리는 아직도 ‘진짜 늑대’가 나타날까 봐 그를 못 버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번에 조진웅 음모론을 그냥 웃어넘긴 것처럼 “또 저러네” 하면서 넘어가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