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가장 큰 과제는 사법 리스크 탈출이었다. 대장동을 필두로 선거법·대북 송금 등 10여 가지 의혹이 따라다녔다. 당시 이 대통령은 ‘절대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변호사들조차 대책을 내놓지 못할 때 늘 돌파구를 제시한 건 이 대통령이었다. 한 측근은 “밤잠도 자지 않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대응 방안을 착안해 냈다”고 했다.
요즘 여권은 대통령에게서 ‘피고인’ 석 자를 떼내기 위해 다시 총력전에 들어갔다. 재판에서 공소 취소나 면소(免訴), 무죄를 이끌어 내기 위해 위헌 논란을 부르는 무리수까지 남발하고 있다. 대통령 재판을 중지시키는 ‘국정 안정법’을 시작으로 사건 담당 판·검사들을 겨냥해 ‘법 왜곡죄’를 만들겠다고 했다. 허위 사실 공표죄와 형법상 배임죄 폐지는 선거법과 대장동 사건 면소를 염두에 둔 것으로 비쳤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국감 증인석에 세웠고, 대법관 증원과 법원행정처 폐지에 나섰다. 사실상 4심제인 재판소원도 추진한다고 했다.
대장동 1심 판결 후 강도는 더 세졌다. 검찰은 대장동 일당이 수천억 원의 부당 이득을 환수당하지 않도록 항소를 포기했다. 이 대통령은 대북송금 관련 이화영씨 위증 사건 검사들이 법정에서 집단 퇴장한 것을 문제 삼아 감찰을 지시했다. 그동안 민주당의 과속에 제동을 걸던 대통령이 대선 때처럼 전면에 나선 것이다. 임기 초반 국정 에너지를 대장동 벗어나기에 쏟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윤석열 정부가 그랬다. 윤 전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재임 끝까지 ‘김건희의 강’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김 여사의 주가 조작, 명품 가방, 인사·국정 개입 의혹이 줄줄이 제기됐지만 모두 묵살했다. 참모들이 김 여사 문제 해결을 건의하면 화부터 냈다. 국민 여론엔 귀를 닫고 국정 동력을 ‘김건희 지키기’에 쏟아부었다. 폭주의 종착점은 비상 계엄과 탄핵이었다.
지금 이 대통령 재판은 모두 중단돼 있다. 재임 중 사법 리스크는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그런 기회를 줬다. 그런데도 여전히 대장동 재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편파 수사로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한다. 그렇다면 퇴임 후 재판에서 무죄를 다투면 된다. 논란을 일으킬 정치적 액션은 피하고, 대장동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그런데 여권은 걸핏하면 대장동 늪을 메우겠다고 진창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3년 내내 김건희의 강에서 허우적대다 끝난 윤 정부를 또렷이 보고도 그 전철을 밟을 것인가. 여권은 “윤 전 대통령이 김 여사를 구하기 위해 헌정 질서를 파괴했다”고 비판해 왔다. 하지만 재판 리스크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법부를 부당하게 공격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귀를 닫고 있다.
이 대통령은 ‘통합과 실용’으로 국민을 하나로 모으고 경제를 성장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실패까지 옹호하며 역주행하고 있다. 통계와 원전 경제성 조작, 서해 공무원 대북 몰이에 면죄부를 주려고 감사 뒤집기에 나섰다. 정치 보복은 없다더니 특검에 이어 전 부처 공무원을 조사하는 TF를 만들었다. 문 정부의 적폐 청산과 다르지 않다. 규제 일변도 부동산 정책, 기업 옥죄기 입법, 현실성 없는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정책, ‘쿠주성’(소비 쿠폰 주도 성장)도 빼닮았다.
국민이 각종 의혹에도 이 대통령을 뽑은 것은 일 잘하는 대통령, 먹사니즘으로 잘살게 해주는 대통령을 원했기 때문이다. 대장동·선거법 등 재판은 퇴임 후 당당하게 임하면 된다. 혹여 문제가 있더라도 국민은 과거 허물보다 재임 중 치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대통령에게 최고의 방패는 국정 성과다. 대장동 재판 집착증은 역효과를 부른다. 무리수를 쓴다고 늪이 메워지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