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이재명 대통령. 이 대통령은 이날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며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판단하는 것이고, 사법부 구조는 사법부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연합뉴스

시절이 어지러울 때면 국가를 생각한다. 특정 집권 세력의 부침과는 상관없다. 지금 우리는 어떤 정치 상황에 갇혀 있는가. 국가는 어디 갔는가. 기원전 4세기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20세기 옐리네크의 ‘일반 국가학’에 이르기까지 독자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게 된다. 결론은, ‘국가란 영토와 주민의 영속성을 보전한다’는 것이다.

영속성을 지키려면 두 가지가 필수다. 첫째는 외적의 침공을 막아내야 한다. 미사일과 드론이 날아오고 탱크와 군홧발이 국경을 넘어오는 군사적 ‘약육강식’은 세계 곳곳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외침을 막고 그 가능성까지 예방하는 게 안보다. 뚫리면 절멸이다. 혹은 우크라이나처럼 영토 할양 요구에 직면한다.

둘째는 영속성을 위해 내부 훼방꾼을 다스려야 한다. 도둑, 사기꾼, 강도, 살인범, 간첩을 잡아내고, 주식시장과 상거래에서 불법을 저질러 부당 이득을 취한 자를 적발하고, 파업으로 큰 손실을 끼친 자, 일터의 안전 규정을 어겨 생명을 잃게 한 자, 공직과 기업에서 배임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고, 공정한 선거를 방해한 자를 찾아내 단죄해야 한다. 더 크게는 극단 세력, 반국가 세력을 솎아내야 한다.

이는 외적을 막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사회 질서를 교란하여 행정과 법원의 기능을 곤란’하게 만드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여기서 내부의 범죄를 색출하고 처벌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우리는 ‘사법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사법 시스템이 망가지면 국가는 안에서 붕괴 위기를 맞는다. 역사에 기록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사법(司法)은 ‘법을 맡아서 관리하고 집행한다’는 뜻이다. 넓게는 검경 같은 수사기관도 포함되겠지만, 핵심 역할은 법원이 맡고 주관한다. 법을 해석하여 분쟁을 해결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며, 국민 권리를 보호한다. 이를 공정하게 운용하는 것도 국가의 사활적 기능이다.

이때 사법의 독립과 공정성을 지켜줘야 할 일차적 책임은 대통령과 집권 세력에게 있다. 그들이 사법부의 조직 구성과 운용 절차를 정하는 입법권을 쥐락펴락하고, 그들이 사법부의 수뇌부를 임명하는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 대통령과 측근 멤버들이 사법 시스템의 소추 적용을 받는 ‘당사자’라는 점에 있다.

지금 나라가 겪고 있는 혼란과 고통의 출발점은 최고위 사법부의 인사권자가 사법 적용의 당사자라는 점에서 비롯됐다. 피고인이 재판장을 임명하는 모순인 것이다. ‘대통령의 셀프 재판부 세팅’으로 최악의 이해 충돌이 벌어진다.

사안은 심각하지만 해결책은 있다. 최종심 재판부의 인사권자가 법률에 따라 추천받은 후보자를 기계적으로 임명하되, 본인 임기 동안 사법 시스템 운용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공정함이 담보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지금 사태는 정반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대통령이 ‘삼권의 서열’을 말하는 순간 끝장났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법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법관 사퇴를 압박하고 인사와 징계를 전횡하겠다는 협박까지 하면서 본인들의 ‘당사자임’을 벗어던지려 하고 있다. 재판 중지나 항소 포기에 이어 공소 취하, 공소 기각, 면소 판결, 공소시효 완성, ‘셀프 사면’까지 총동원할지 모른다. 그러나 본인들도 알 것이다. 사법 적용의 ‘당사자임’은 절대 그냥 없어지지 않는다.

앞날은 어둡다. 국민 절반이 선거 승리가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는 저들의 착각과 오만을 용인하면 진짜 국가 위기가 닥칠 것이다. 그땐 국가의 존재 이유를 따지는 일조차 부질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