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1차전 삼성 라이온즈와 SSG 랜더스의 경기가 관중으로 가득하다. /연합뉴스

프로야구 팬들은 봄부터 마음이 가을에 가 있다. 때로는 승승장구, 때로는 기신기신하지만 여름을 잘 견뎌야 10월에 야구를 할 수 있다. 팀은 10곳, 자리는 다섯뿐이다. 성적 순으로 5팀만 ‘가을 야구’ 초대장을 받는다. 응원하는 팀이 탈락하면 포스트시즌은 남의 잔치다. 입맛도 없다. 프로야구 관중은 올해 처음 1200만명을 돌파했는데 절반만 행복하고 절반은 울적할 것이다. 그깟 공놀이 때문에.

지난해 챔피언 KIA는 올해 8위로 추락했다. KT, 롯데, 두산, 키움도 라커 룸에서 짐을 뺐다. LG, 한화, SSG, 삼성, NC로 압축된 가을 야구는 실책 하나, 홈런 한 방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아슬아슬한 끝장 대결이다. 팬들은 경기의 승패를 자기 일처럼 여긴다. 시간과 돈, 정서를 투자해 왔기 때문이다. 이기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호하고, 지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팬(fan)’이라는 단어는 1884년 야구 행사 기획자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처음 사용했다. 어원은 광신자(fanatic)인데, 야구장에서 자주 목격된다. 같은 유니폼을 입은 채 먹고 마시며 소리 지르고 춤추며 울고 웃는 관중. 그들에게 팀은 확장된 자아이자 맹목적 믿음의 공동체다. ‘푸른 피 삼성’ ‘부산 갈매기’처럼 지역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깟 공놀이가 아니란 말이다.

21세기는 개인의 시대라고 누가 말했나. 천만의 말씀이다. 너무 가까우면 가시에 찔려 상처받고 너무 멀면 외로워지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고슴도치 딜레마’(쇼펜하우어)라 한다. 그런데 온라인 시대가 되자 거리를 두면서 가까워질 방법이 많아졌다. 취향을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번성한다. 오프라인에서도 조용필이나 임영웅, 축구팀이나 야구팀을 떼창으로 응원한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무언가의 팬이 된다. 야구와 축구, K팝과 정치를 보면 집단의 시대는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대규모로 모여 같은 정체성과 소속감을 추구하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성취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팬심은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와 같다. 건설뿐 아니라 파괴에 사용될 수도 있다. BTS 팬덤처럼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권력이 돼 차별을 조장하기도 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영국 옥스퍼드대의 한 과학자가 응원단의 코르티솔 수치 변화를 관찰했다. 코르티솔은 스트레스에 대처할 때 나오는 호르몬이다. 열성 팬은 승패와 관계없이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브라질 응원단의 코르티솔 수치는 준결승에서 독일에 7대1로 무너지자 그야말로 지붕을 뚫었다. 열성 팬으로 산다는 것은 격렬한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일이다.

승리하면 “우리가 이겼다”며 끌어안고, 지는 날에는 “저것들이 졌다”며 내친다. 팬 심리학은 그걸 ‘감정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으로 해석한다. 욕하면서 야구를 본다면 아마도 열성 팬일 것이다. 경기에 참여할 순 없지만 그렇게라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욕은, 정말 꼴 보기 싫고 저것들이 프로가 맞나 비판하면서도 계속 지지하며 내일은 이기길 바라는 팬심의 역설이다.

7년 만의 가을 야구를 앞둔 50대 한화 이글스 팬은 직장이나 배우자, 종교는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야구팀은 절대 못 바꾼다는 뜻이다. 실망, 배신, 좌절, 분노, 체념 같은 감정에 난타당해도 야구를 끊을 수 없다. 스토브리그를 지나 봄이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희망을 품게 되는 중독과 망각의 스포츠.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대사를 빌리면 “와라, 가을아!”를 또 외치게 되는 것이다. 와라, 가을아!

야구공은 둥글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인터넷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