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작년 9월 국회 본회의에서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마친 뒤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광복절 사면 전 측근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조국 전 대표를 왜 사면해 줘야 합니까?” 명분이 없다는 뜻이었다. 연말이나 내년으로 미루자는 의견이 적잖았다. 하지만 조국혁신당이 대선 협력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여권 내부와 지지층의 압박도 컸다. 현실론에 밀렸다.

원칙을 어긴 대가는 컸다. 지지율이 뚝 떨어졌다. 조 전 대표는 출소하자마자 내년 선거 출마를 공언했다. “이재명 정부 성공”을 말하면서도 합당엔 선을 그었다. 지지율 하락에 대한 책임은 “n분의 1”이라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고 지역 순회에 나섰다. 독자 세력화 의도가 명확했다. 대통령실은 당혹감을 넘어 배신감이 컸다고 한다. 민주당이 뒤늦게 “개선장군 행세 말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국이 움직이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경쟁이 불가피하다. 호남 등 여권 기반을 잠식할 것이다. ‘호랑이를 풀어준 격’이다.

대통령의 더 큰 고민은 정청래 민주당 대표다. 정 대표는 방송법과 노란봉투법, 상법, 검찰·법원 개혁안 등을 줄줄이 밀어붙이고 있다. 그는 대통령에게 “내가 배드캅이 돼 개혁의 선봉을 맡겠다. 한두 달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궂은일은 자신이 할 테니 대통령은 믿고 따라와 달라는 뜻이었다.

이 대통령은 큰 방향엔 공감했지만 방법론이 달랐다. 실용주의 노선에도 어긋났다. 덧나지 않게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모들이 이런 뜻을 전했지만 정 대표는 듣지 않았다. 대통령이 직접 정 대표를 만났다. 그런데 오히려 ‘추석 전 법안 처리’로 결론 났다. 대통령의 ‘실용과 통합’ 대신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관철된 모양새였다. “명심(明心)보다 청심(淸心)”이라는 말이 나왔다. 대통령실에선 “개혁의 과실은 정 대표가 따먹고 욕은 대통령이 먹는다”고 했다. 명·청의 굿캅·배드캅 역할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정치권 주연으로 떠오른 두 사람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마음은 난감할 것이다. 정 대표가 지지층의 박수를 받으며 자기 정치를 하는 사이 대통령의 국정 주도력은 약해졌다. 실용 노선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조국의 재등장은 지지율을 깎고 원심력을 키웠다. 대통령실 핵심 인사는 “대야 관계보다 ‘조·청(曺淸) 관계’가 더 골치 아프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미 여권의 차기 후보군으로 떠올랐다. 역대 정권에서 이인자들이 이처럼 일찍 전면에 나선 적은 없었다.

지금 이 대통령의 가장 큰 과제는 트럼프발(發) 통상·안보 위기와 구조적 저성장의 함정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유연한 실용주의 정책을 통해 기업과 성장 동력을 키워야 한다. 통합과 협치로 국민 지지도 높여야 한다. 그런데 여당은 기업을 옥죄고 성장을 가로막는 법안들을 연이어 강행 처리했다. 국민의힘을 ‘국민의 적’이라고 비하하고 외면했다.

정청래식 폭주를 방치하면 실용도 협치도 힘들다. 중도·보수층은 이탈하고 대통령 리더십도 흔들린다. 조국을 놔두면 범여권이 분열할 것이다. 두 사람을 적절히 제어해야 한다. 하지만 정 대표의 관심은 딴 곳에 있는 듯하다. 머리에 금관을 쓴 사진을 올리고, 노란봉투법 처리 후 “역사적으로 큰일 했다”고 자화자찬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싸우면 정권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노무현-정동영, 박근혜-김무성, 윤석열-이준석·한동훈이 그랬다.

조 전 대표는 ‘포스트 이재명’을 바라보고 있다. 현 정권에 협력자인 동시에 경쟁자다. 친문·호남 교두보를 토대로 언제든 적이 될 수 있다. 조·청이 차기 경쟁을 하면 통제는 더 힘들어진다. 이 대통령으로선 취임 두 달여 만에 풀기 힘든 난제에 부닥쳤다. 스스로 밝힌 노선과 원칙을 어긴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