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차 임시전국당원대회에서 대표 수락 연설 중인 정청래 대표. 정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내란과의 전쟁 중"이라고 했다. /뉴시스

프레임은 무섭다. 계엄보다 무섭다. 계엄 며칠 뒤 내란 프레임은 정치권뿐 아니라 나라 전체를 장악했다. 계엄이 곧 내란인가 하는 본질적 질문을 던질 틈도 없이 순식간에 우리 사회를 집어삼켰다. 잘못 대항하면 홍위병 시절의 반당주의자처럼 낙인찍을 기세였다.

검찰도 법원도 헌재도 내란 프레임에 갇혀 꼼짝 못 했다. 어쩌면 특검도 내란 프레임에 퍼즐 맞추기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결론은 이미 정해졌고 공소장의 빈칸을 채우도록 관련자들의 진술을 쥐어짜는 것일 수 있다.

프레임은 국가를 지배하는 최상위 법전 행세를 하고 있다. 그제 여당 신임 대표는 “내란과 전쟁 중”이라 했다. 야당은 “헌법 파괴 세력”이고 자기들은 “수호 세력”이어서 “악수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는 내란 프레임을 딛고 서 있다.

내란 프레임은 파생 상품이 많다. 내란 공모, 내란 동조, 내란 방조, 내란 선동 같은 쪽으로 가지를 쳤다. 급기야 상대를 내란 당으로 몰아 해산 청구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내란 당에 표를 주는 유권자에게 공범이라는 죄의식을 심는 전략처럼 보였다.

여기서 갑자기 톡 튀어나온 파생 상품이 극우 프레임이다. 내란 프레임 하나만으로도 다음 지방선거를 어떻게 치를지 아득한데, 난데없는 극우 프레임이 보수의 발목을 잡았다. 극우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토론을 벌일 틈도 없이 극우 프레임은 순식간에 보수 정당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대북 라디오 방송을 중단하면 안 된다고 하면 극우인가.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면 극우인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 극우인가. 성소수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면 극우인가. 이승만·박정희를 존경하면 극우인가. 손에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나서면 극우인가. 윤 전 대통령에게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하면 극우인가.

어디에도 명확한 분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명확한 분계선이 없을 때 프레임 전략이 유용하다. 상대를 어떤 틀에 가둬놓고 몰아세우면 나에게 필요한 정치 에너지가 발생한다.

처음엔 외부에서 극우 프레임을 투척했으나 뒤에는 자체 생성됐다. 이것은 포지셔닝 전략에서 나왔을 것이다. 상대를 극우로 규정하면 내가 저절로 중도의 위치에 오게 된다는 것이 포지셔닝 전략이다.

그러나 극우 논쟁은 필연적으로 보수 진영의 내부 총질을 불러 오는데, 내부 총질은 원거리 조준 사격이 아니라 근거리 지향 사격일 때가 많아 피해가 막심하다.

보수도 진보 쪽을 향해서 프레임을 발동할 때가 있다. 예컨대 좌빨 프레임, 체제 전쟁 프레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좌빨 프레임은 ‘얻다 대고 색깔론이냐’, 이 한마디에 흐물흐물해지곤 했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체제 전쟁이라는 프레임을 시도했으나 내란 프레임에 맥을 못 췄다. 대통령 탄핵 심판은 본질적으로 북중러 체제와 한미일 체제의 대결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보려 했으나 힘에 부쳤다. 내란 프레임은 쉽고 화끈했는데 체제 전쟁 프레임은 내용이 어렵고 전파력이 약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친일 프레임으로 파란을 겪었다. 해방 공간부터 지금껏 친일 프레임은 약발이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좌파는 상황 반전이 필요할 때마다 친일 프레임을 꺼내 들었다. 죽창가를 부르고 친일 프레임을 덧씌우면서 자신들은 독립군이라도 된 듯 포지셔닝했다. 조국 사태 이후엔 ‘김건희 프레임 하나만으로도 선거 이긴다’고 큰소리쳤다.

프레임은 모래 수렁 같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그만큼 선동적이다. 지금까지 보수는 프레임 전쟁에서 백전백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