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은 학습 능력이 남다르다고 한다. 판단도 빠르다. 대통령실 인사들은 “핵심을 파악해 단박에 정리한다”고 말한다. 관심 분야도 다양하다. 양자(量子) 정책에 대한 회의가 있었는데 대통령이 장시간 전문적 물리 지식을 쏟아냈다. 전문가가 “나보다 설명을 더 잘한다”며 놀랐다고 한다. 외교·안보·경제 분야도 “그건 이런 것 아니냐”며 쉽게 결론을 낸다. 노동·연금·교육 개혁과 신산업 성장 정책, 대미·대일 외교 강화라는 큰 방향도 직접 틀을 잡았다.

윤 대통령은 막후 접촉 범위가 넓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교수·기업인·종교인·기자·유튜버 등과 수시로 전화하고 텔레그램으로 소통한다. 한밤중이나 새벽에 대통령 메시지를 받았다는 이가 많다. 대통령이 답을 하니 사적 경로로 조언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정책·정무적 조언뿐 아니라 정치권 분위기와 각종 소문까지 모두 대통령 귀에 들어간다. 대통령이 직접 듣고 보고 말하고 결정하는 일이 그만큼 많다.

어느 때부턴가 대통령실 주변에서 ‘59분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왔다. “무슨 의미냐”고 물었더니 “회의 1시간 중 59분을 윤 대통령이 말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과장이 섞였겠지만 발언이 그만큼 길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검사 때도 후배들과 어울려 말하기를 좋아했다. 대선 후보 시절 회의 중 상당 시간을 본인이 발언했다. 각 분야 지식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취임 후엔 발언 점유율이 더 올라갔다. 90%라는 말도 있다. 각 부처 보고가 더해지니 대통령이 알고 말할 게 더 많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듣기 좋아할 정보만 주로 올라올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땐 대통령 말을 받아 적기만 해서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있었다. 지금은 ‘듣기만 한다’고 해서 ‘듣자생존’이란 얘기가 나온다. 대통령의 말을 경청하다 보니 참모들이 말할 시간이 자연스레 줄어든 이유일 것이다. 제대로 준비 없이 튀거나 다른 말을 했다가 질책받은 참모도 적잖다고 한다. 대통령은 직언도 듣지만 근거와 논리가 있어야 받아들인다. 함부로 언급해선 안 되는 ‘금기’가 있을 수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보고서 쓸 때 대통령 생각을 미리 잘 살핀다”고 했다.

참모들이 작은 일까지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판단을 구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고 한다. 자기 생각대로 잘못 결정했다가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전결이 줄어드니 자연스레 ‘보고 병목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보고하려 기다리다 결정이 미뤄지는 것이다.

대통령 입김은 여당에도 전달된다. 전당대회에서 윤 대통령은 나경원 전 의원 출마를 막았고, 안철수 의원에겐 “국정 훼방꾼이자 적”이라고 했다. 친윤 지도부를 만든 것도 대통령의 힘이었다. 최근 당직 인사 때도 대통령 뜻이 전해졌다고 한다. 김기현 대표의 존재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총선 공천 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대통령 지지율은 최근 30% 아래로 떨어졌다. 여당 지지율은 ‘이재명 민주당’에도 뒤진다. 밤잠을 줄여가며 일하는데 왜 이러는지 억울한 마음이 들 것이다. 국정의 큰 방향이 맞더라도 디테일을 잘해야 한다. 정치는 국민 마음을 얻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정치한 지 1년도 안 돼 대통령이 됐다. 아직 정치에 익숙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지시할 수는 없다. 말하기보다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참모나 전문가에게 맡길 건 맡겨야 한다. 실수도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 지지율이 낮아진 이유를 겸허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 미래도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