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권을 막론하고 대통령에게 쓴소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무성했다. 대통령의 언행이 꼬일 때 쓴소리를 하는 참모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쓴소리 좋아하는 ‘윗분’은 없다. ‘기분 상하지 않게 쓴소리하는 법’은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보다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보스에게 충고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일이다. 쓴소리를 시도했다가 눈총을 받고 입을 다물기도 한다. 프랑스에선 “금지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는 말을 곧잘 하지만, 그러나 “충고하지 말라는 충고”도 유효하다. 쓴소리를 한 덕에 영전하는 일은 드물다. “허심탄회하게 말해보라”는 상사 말을 곧이듣고 허심탄회하게 말했다가 인생이 허심탄회해진 경우는 더러 봤다.

처세의 달인, 정권에 관계없이 양지(陽地)만 딛고 살아온 인물을 보면 윗사람에게 쓴소리를 삼가면서도 할 일을 할 줄 아는 비법을 아는 사람들이다. 이런 말도 있다. “항상 넥타이를 매라. 술에 취해서도 쓴소리는 하지 말라. 그러면 넘버2 위치까진 올라갈 것이다.” 쓴소리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현 정권도 ‘쓴소리 부재(不在)’ 상황은 비슷하다. 노동부 장관이 주 52시간제를 개선하는 방안을 내놓자 이튿날 대통령은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실이 코로나 확진자가 많아서 도어스테핑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는데, 이튿날 출근길 대통령은 보란 듯이 기자들과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런 일이 있자 장관도 참모도 쓴소리 대신 입에 자물쇠를 채웠다. 대통령의 심기 경호가 ‘1호 임무’가 돼버렸다.

진부하게 반복되는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 ‘사나운 고양이’인 대통령의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 당신 같으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쓴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반문(反問)이다. 둘째는 대통령이 쓴소리를 들을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이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 했다. 백성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민심을 얻는다는 뜻이다. 본인 말만 내세우면 국민 마음은 멀어진다.

윤 대통령은 장관들에게 “발로 뛰라” “스타 장관이 나왔으면 좋겠다” “나는 안 보여도 좋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우조선 하청 노조의 불법 파업과 관련, 다섯 장관이 내놓은 “영혼 없는” 합동 담화문을 들으며 참 불편했다. 파업이 두 달째 이어지고, 수천 억 손실이 나고 있는데, 장관들이 정말 생각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겠나. 대통령 지시가 떨어지자 부랴부랴 담화문 내고 헬기 타고 현장에 갔다.

“대통령실이 사적 채용 정실 인사로 가득 찼다”는 말이 나올 때, 야당 쪽에서 “김건희 여사의 입김이 제일 셌다더라” “장제원이 다 주물렀다더라”고 비아냥거릴 때, 그리고 도어스테핑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대통령이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은 채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을 때, 신문 사설·칼럼 말고는 쓴소리하는 데가 없었다. 대통령실 수석들, 국민의힘 지도부, 여당 의원 중 누가 입을 열었는가.

명심해야 한다. 쓴약을 거부하면 국민이 사약을 내린다. 국민이 정권에 표를 준 이유를 늘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쓴 약 먹는 시간’을 아예 따로 만들라고 제안하고 싶다. 조선 시대에 임금에게 쓴소리 하기를 전담했던 사헌부·사간원·홍문관 같은 언론삼사(言論三司)까지는 아닐지라도 뭔가를 해야 한다. 20~30대에 많이 했던 ‘야자 타임’의 추억이라도 살려서 차담, 커피 타임, 뭐라도 좋다. 일주일에 한 번, 오로지 쓴소리만 하고 쓴소리만 듣는 시간을 “제도적으로” 만들면 어떨까. 대통령이 ‘쓴소리상(賞)’을 뽑아 금일봉을 주면 더 좋겠다. 쓴소리 많다고 국정 운영이 더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