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청춘에게 주긴 너무 아깝다.” 이런 말을 버나드 쇼가 했다. 요즘도 여러 칼럼이 즐겨 인용한다. 청춘이 얼마나 귀중한 시기인지 강조하는 척하다가 청춘의 어리석음을 꼬집는다. 어쩌랴. 꽃은 자신이 꽃인 줄을 모른다. 최근 나온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대담집을 보니 버나드 쇼가 인용돼 있다. 너무도 찢어지게 힘들었던 청년 시절을 회상하는 대목이었다.

민태원은 수필 ‘청춘 예찬’의 첫 대목을 이렇게 장식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중장년은 교과서에서 읽어 오래 기억하는 문장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듣기만 해도 일을 저지르고 싶지 않은가.

그러나 시인 박인환은 ‘목마와 숙녀’에서 흐느낀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이런 대목이 무슨 뜻일까 궁리할 필요는 없다. 청춘을 찾은 화자(話者)가 술을 마실 땐 몽롱하게 삶의 리듬을 타고 있을 뿐이다. 비관과 퇴폐도 청춘의 낭만적 특권이다.

가수 양희은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그 시절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처녀 가장(家長)이 되어 집안을 건사해야 했던 때가 그만큼 버겁고 힘겨웠다는 뜻이다.

중국에도 한국에도 몇몇 유튜버가 ‘늙은 내가 젊은 나에게’ 형식의 영상을 띄워놓고 있다. ‘예순 살 내가 서른 살 나에게’ ’40세 내가 20세 나에게' 이런 식이다. 돈에 대해 공부해라, 담배 피우지 마라, 치아를 소중히 해라, 취미를 가져라, 외국어를 익혀라, 시간을 아껴라, 남의 말을 너무 믿지 마라, 모든 사람과 잘 지내려 노력하지 마라끝이 없다. 하긴 그때 나도 이빨로 병마개를 따곤 했다.

서른여섯 청춘이 야당의 당대표가 되자 사람들은 ‘현상’이라고 했다. 최종 평가는 잠시 미뤄놓더라도 ‘변화의 징조’라는 점은 다들 인정했다. 그가 ‘훗날 76세인 나’를 상정하고 ‘지금 36세인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충고를 떠올려보면 좋은 약이 될 것이다. 그런데 아마 힘들 것이다. 늙은 오만보다 젊은 오만이 몇 배 위험하다.

어떤 노익장 대선 후보가 20대처럼 가죽 점퍼에 벙거지 모자를 쓰고 동영상을 찍었다. 국회의장에 총리를 지낸 어른이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가슴이 아렸다. 두 살배기 앞에서 늙은이 재롱이 흥겨울 때도 있다. 그러나 선거 때문이라면 너무 서글프다. 꼰대가 꼰대다우면 왜 안 되는 것일까.

청춘이여. 1945년 8월 ‘북쪽 소련군은 해방군, 남쪽 미군은 점령군이었다’는 유비(流蜚)통신에 속지 말라. 제발 양쪽 포고령의 전문(全文)을 보라. 북을 점거한 소련군 제25군 사령관 이반 치스탸코프 대장의 포고문은 “위대한 수령이신 스탈린 대원수”를 무려 8차례나 언급하며 찬양하고 있다. 1930년대 이미 수백 만을 학살한 스탈린은 ‘조지아의 도살자’였다. 치스탸코프 포고문은 정치적 프로파간다였고, 맥아더 포고문은 그냥 실용문이었다.

아마 청춘들은 큰 관심 없을 것이다. 흙수저 청춘은 그저 부모 선택권이 없었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생 선택권은 있다. 그것도 해마다 갱신된다. 잊지 말기 바란다. 1945년 해방 공간에서 선대들은 체제 선택을 고뇌해야 했다. 본인 자신을 위해, 그리고 대대손손 자식들을 위해 그것은 절체절명의 선택이었다.

민태원은 ‘피 끓는 청춘’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그가 옳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이 역사와 진실을 놓치면 안 된다. 버나드 쇼는 묘비명을 손수 이렇게 적었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