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 공수처가 출범한다. 다음 주 공수처장이 임명되면 사실상 닻을 올린다. 차장 선임하고 23명 검사 뽑고 40명 수사관 모으는 일이 뒤따를 것이다. 이미 물밑 작업은 이뤄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법제처장 출신 남기명씨가 설립 준비 단장을 맡은 게 열 달 전이다.
정치권도 법조계도 관심은 한 가지다. 누가 처장이냐 못잖게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은 누굴까 하는 점이다. 아무튼 고관대작일 텐데 공수처의 성격과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결정지을 첫 수사는 누구를 겨냥하게 될까. 못된 아이를 자루에 넣어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크람퍼스 같은 ‘블랙 산타’는 어젯밤 누구 집 굴뚝에 공수처 소환장을 넣었을까.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는 기관이다. 법 제2조는 이때 고위공직자를 17개 호(號)로 나눠 적시한다. ‘가’호는 대통령이다. 나·다·라·마·바 호엔 5부 요인과 국회의원·대법관·헌재재판관·정무직 공무원을 명기했다. 타에 광역단체장, 파에 판사 및 검사 등등이 나열돼 있는데, 3급 이상 군인과 경찰까지 포함하다 보니 항목이 많아졌다.
여당 쪽에선 윤석열 검찰총장이 수사 1호가 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벌렸다. 최고위원이나 상임위원장 같은 지도부에서 나온 소리다. 판사 사찰 의혹 등으로 이미 두 번 징계받은 윤 총장은 검찰 수사 중인데 그게 부진하면 공수처가 이어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윤석열 징계 파동’은 동전의 양면을 지녔다. ‘윤석열 사건’이면서 동시에 ‘추미애 사건’이다. ‘문재인 사건’도 된다. 공수처법에 대통령은 수사 대상 ‘가’호, 추 장관은 ‘사’호, 윤 총장은 ‘카’호에 해당한다.
공수처가 윤 사건을 수사했는데 무혐의로 드러나고 대신 추 장관이 윤을 찍어내려 위법 징계를 밀어붙였다는 게 밝혀지면 수사는 곧바로 추 사건으로 전환돼야 한다. 추 장관의 무리수와 위법을 알면서도 대통령이 윤 징계를 재가했다면 문 사건으로 비화될 것이다.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예단도 필요없다. 문 대통령이 작년에 “우리 윤 총장~”이라며 끈끈한 척했지만 오늘날 이런 결과가 나왔다. 그가 새해 벽두 “우리 공수처장님~” 하면서 임명장을 주어도 그 칼끝은 독립적일 수 있다. 공수처 처장과 검사들이 과학적 진실과 양심만 잃지 않는다면 결과는 정의를 찾아갈 것이다.
도끼 날을 만든 자와 벼린 자가 있겠으나 그 날이 누구 발등을 찍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과 진실만을 좇는 수사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공수처장이 누가 되든 수사 대상 첫 인물로 대통령을 검토해야 한다. 이젠 되풀이하는 것도 좀 지겨워졌는데, ‘울산시장 선거 공작과 청와대 개입 의혹 사건’ 그리고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은 명백히 대통령 관련 사건이다.
논리 추론은 간단하다. 만약 문 대통령이 없었어도 두 사건이 일어났을까 하고 가정(假定)해보면 금세 답이 나온다. 두 사건은 문 대통령이 없었으면 안 일어났을 사건이다. 그래서 대통령 관련 사건이다.
공수처는 퇴직 공직자 그리고 전·현직의 가족도 수사 대상이다. 최근 문 대통령 아들 준용씨와 관련되어 불거진 여러 의혹도 공수처엔 ‘가’호 사건이다. 첫째로 스크린을 해야 하는 대상이다.
더구나 청와대 특별감찰관이 4년째 공석이다. 국회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해야 되는데 취임 후 지금껏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 가족의 비위를 살펴야 하는 공수처 임무가 더욱 절박해졌다.
공수처는 탄생부터 위헌적·위법적 요소가 많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공수처가 자기 자신을 수사 1호로 삼는 것도 괜찮다. 자신을 만든 국회의원과 강압 처리 과정을 수사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체성 확립과 국민 신뢰 획득의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