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경기에서 숨 가쁜 패스로 적진을 휘저으면 귀를 찢는 관중 함성이 파도를 치고 골이 터지든 빗나가든 정신이 먹먹하다. 아차 하면 순간을 놓친다. 중계 캐스터와 해설자도 하이 데시벨로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페널티 킥(PK)은 다르다. 주심 휘슬이 울리면 이쪽도 저쪽도 일순 고요하게 숨을 멈춘다. 한 점 차로 승패가 갈릴 땐 더욱 그렇다. 8강, 4강으로 좁혀가는 경기라면 세계 축구 팬들이 마른 침을 삼킨다.

▶어제 새벽 4강 티켓을 놓고 숙적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붙었다. 결승전에 버금가는 빅 매치였다. 새벽 시간 TV 앞을 지킨 국내 팬도 많았을 것이다. 프랑스가 한 점을 먼저 넣은 뒤 동점이 됐고, 다시 프랑스가 2대1로 앞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잉글랜드에 또다시 PK 찬스가 찾아왔다. 키커는 손흥민의 ‘토트넘 절친’ 해리 케인이었다. 결과는 공이 골대 위 하늘로 날아가는 어이없는 실축이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는 말이 실감났다. 케인은 같은 경기에서 첫 번째 PK를 성공시켜 환호에 휩싸였다가 두 번째 찬스에 ‘홈런볼’을 차버린 뒤 고개를 떨궈야 했다. 그때 케인 표정이 너무 참담했다. 평생 처음 당하는 대(大)실패를 겪은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졌고 무릎이 꺾였다. 패배한 경기 뒤 케인은 “책임을 통감한다” “내가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세계 PK 실축 톱10′ 명단을 보면 몸값 비싼 선수들과 비슷하다. 한 사이트는 네이마르 7개, 호날두 18개, 메시 22개로 집계했다. 한 경기에서 PK를 세 번 실축한 아르헨 선수도 있었다. 골대 맞히고, 하늘로 날리고, 골키퍼에게 찼다. 그탓에 10년 동안 대표팀에 얼씬도 못했다. 2002년 우리가 이탈리아와 붙었을 때 실축했던 선수는 마지막에 ‘극장골’로 만회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가나 선수가 실축하자 일곱 살 딸이 실신했다고 한다.

▶이론상 PK는 들어가야 한다. 공과 골키퍼 거리가 11m, 공이 골라인을 넘는 데 0.4초, 반면 골키퍼가 몸을 날리는 시간은 0.6초쯤 된다. 보통 득점률은 80%쯤인데, 승패가 걸리면 44%에 불과하다. 이건 기술이 아니라 멘털이다. 중압감이 살인적이다. 그러나 실수가 있기에 인간이고, 실수도 경기의 일부다. 주홍 글씨가 아니다. 선배 웨인 루니는 케인에게 “고개를 들어라, 자랑스럽다”고 했다는데, 루니도 실축이 12개다. 이제 케인은 후배 선수들에게 실축을 이겨내는 용기를 보여야 하는, 축구보다 중요한 임무가 생겼다.